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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Jul 31. 2024

수성에서 날개 펴기(3)


수성에서 날개 펴기(2)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힘든 일도 아닌데 뭘. 나도 오랜만에 속도 좀 내보고 싶었어.



남자는 선뜻 화산 국립공원에 데려다주겠단다. 그는 CNN에 소속된 에디터다. 일 년에 한 차례 정도는 한 달 정도 빼서 다른 지역에서 휴가 겸 일을 한다고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사순이는 늦은 시간까지 소파에 앉아 기사를 쓰는 그를 보았다. 



아. 쉬어야 되는 거 아니야? 너도 차 렌트 안 했잖아?



휴가라지만 그는 딱히 특별한 걸 하기보다 기사 쓰고 남는 시간은 근처에 마실을 다니며?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Chan이 칼스미스 비치나 인근 거북이 서식지로 수영하러 가자고 할 때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주변이 온통 아름다운 자연이니 애써 멀리 가지 않아도 힐링이다. 

멘토레이를 보았다고 사순이가 흥분해서 호들갑을 떨어도 파호아에 숲 속 음악회에 다녀와서 그 기분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며 가슴을 두드리고 있어도 그는 고요한 호수 같다. 그 호수엔 바람조차 없는 것인지 항상 자비로운 불상의 느낌으로 존재한다. 


 

신발이 없어서 걱정했어. 



그가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데워오며 말한다. 



내 신발? 



사순이는 전날 담대한 척하며 혼자 파호아에 갔다가 고립되어 집에 못 올 뻔했다. 차가 없이 가기 어려운 곳에서 사운드 이벤트가 열린다고 했다. 동식물, 사람의 소리, 사람이 만든 악기의 춤이 그곳에 있었다. 심지어 참여자로 온 사람마저 즉흥적으로 자신의 소리를 더했다. 사순이의 옆에서 하프를 연주하던, 백발의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할머니, 그 소리는 사순이의 호흡을 이해하는 것처럼 적절한 시기에 몸을 스쳤다. 아름다운 그 음악들은 밖에서 들리는 것이지만 어쩐지 가슴에서 피어나는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진다. 파호아에서 힐로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주 늦은 밤 그 지역에 이름 모를 여인의 차에 실려 집에 도착하던 그 시각, 그는 깨어 있었다. 사순이의 신발이 그때까지 없었던 거다.  


 

그는 사순이를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매번 두렵다면서도 새로운 걸 어찌어찌 경험하고 와서 한결같이 신나게 떠드니. 심지어 차도 없는데 잘도 다녀오는 거다. 훌라를 배우겠다고 지역 쿠무훌라를 찾을 때는 그는 그냥 웃었지만 왠지 어딜 가서 배우고 올 것만 같았단다. 



그와 다른 게스트와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밤이 있었다.



나는 속도를 내는 게 두려운 같아. 



사순이가 번뜩 생각난 것을 뱉었다. 우리는 두려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차다. 어디서 시작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는 높은 곳에서(그게 갇힌 공간일 때는 더욱이) 가끔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표면적으로는 속도인데. 음.. 속도가 너에게 의미하는 게 뭘까?



사순이는 누군가 재미난 질문을 하면 신난다. 그걸 답하려다 보면 또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글을 쓰는 과정만큼이나 좋기 때문이다. 

 


내면 평균 속도.. 그런 게 있나 본데? 거기에 자꾸 맞추려는 왜일까?

그걸 넘어서는 나를 어딘가 두려워하는 내 안의 존재.. 그게 느껴져.





화산국립공원을 함께 달렸다. 모든 것이 다 타서 재가 되어버린 그 땅에도 꽃이 자라고 있다. 가시처럼 생긴 붉은 꽃.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바로 옆에서 가장 큰 생명력이 솟는다. 용암처럼 꿈틀거리는 그 강렬한 생명.


나의 계기판에 있는 그 숫자만큼 다 올려봐도 괜찮겠다... 사순이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다 올려보지 않아서 얼마가 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싸이와 함께 한 드라이빙






화산을 보고 두 달이 지나고 그는 한국에 왔다. 사순이 때문에 온 건 아니고 CNN 한국지사에 볼 일이 있었고 DMZ와 한국 야구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강남. 그는 화산공원에서 속도를 높이던 싸이를 떠올리며 강남 한복판에서 철 지난 말춤을 추었다.   




사순이는 그와 남산 케이블카를 탔다. 서울 사람인 사순이도 정작 처음 타보는 남산 케이블카.   

높은 곳, 거기가 어딜까.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을 떠올리다가 케이블카를 타보면 어떨까 싶었다. 꼭 제일 높은 곳일 필요는 없었다. 덜컹이는 좁은 케이블카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안에서 그는 다른 마음으로 모든 것이 작아진 그 그림을 보았다.   




한계, 자신이 정한 그 너머를 같이 볼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야. 




트레비스와 케이블카
2023. 여름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커버사진과 본문영상; 빅아일랜드 화산 국립공원, 2023.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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