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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Jul 28. 2024

수성에서 날개 펴기 (2)


수성에서 날개 펴기(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Island 2- Big 아일랜드>



사순이는 이곳에 오자마자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딜 가도 백색소음처럼 배경에 깔려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존재감이 귓전에서 강렬하다. 고향은 푸에르토리코라고 했다. 거기 살던 개구리가 왜 바다 건너 머나먼 하와이까지 온 것인지 궁금했다. 설마 개구리 영법으로 그 먼 길을 헤엄쳐 온 것인가. 모를 일이지. 조상님 중에 그런 유별난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만도 하니까. 신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남몰래 간직하며 매일 같이 푸른 바다의 끝을 응시하던 조상님, 어느 뜨거운 가슴에 이끌려 작은 나무배를 탔던 것일까? 



개구리가 온 게 아니라 알이 왔어. 화분에 담겨서.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야. 1988년이래, 여기 도착한 해가. 



사순이의 상상의 거품을 후-불어 꺼트린 그 역시 아시아계 이민자다.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개구리 조상의 모험기를 벌써 한 두 페이지는 쓰고 있을 터였다. 우연인지 어쩐지 그의 이름이 사순이의 동생과 같다. Chan. 개구리가 이 땅에 처음 오고도 몇 년이 더 흐르고 태어난 그는 노래를 잘 부른다. 춤도 잘 춘다. 피아노도 잘 친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프로 사진작가다. 요리 빼고 다 잘하는 거 같다. 찬, 찬, 찬,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순이는 자신의 혈족이 그렇게 떠오르는 거다. 지금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면 예술가로서도 그는 참 매력적이었을 거다. 어딘가 존재할지 모를 '찬'을 그를 통해 본다. 미국땅에서 그가 그린 개구리 그림은 정말이지 역작이었다. 혈연의 정을 떠나서 그건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곳 Chan은 사순이가 에어비앤비를 뒤져 빌린 집(정확히는 방을 빌림)에 (진짜 호스트를 대신하여) 호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  



얘는 올챙이 시절이 없어. '알'을 깨고 나오면 바로 성체 개구리라고. 



이름은 코키, 귀여운 이름처럼 작은 몸집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엄청나게 크다. 사순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괜히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니 엄마 개구리가 나중에 알이 없어진 알고 얼마나 슬펐을까. 내 새끼 돌려놓아라. 아이고 아이고. 하와이가 웬 말이냐. 피가 거꾸로 솟는구나. 거기로 실려갈 줄 내 짐작이나 했겠느냐.  



Chan은 사순이를 힐끗 본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영 취미에 맞지 않는가 보다. 조상의 파란만장 모험기가 어느덧 신파로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청소기를 돌리려고 전원을 꽂으며 말한다. 



엄마 개구리는 알만 놓고 떠나. 알을 지키는 건 의외로 개구리 아빠 몫 이래. 그것도 딱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만. 

그러니 알에서 나와 처음 마주한 세상은 온전히 자신의 피부로 느끼는 감각인거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정신병자야. 



독하게 싸우고 서로를 향해 모진 말을 쏟아낼 때 귓전을 때리는 말, 거의 혈연을 끊자는 최후의 통첩처럼 햘퀴는 그 말. 

아. 정신이 온전한 인간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마는. 

사순이는 어쩐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게 두렵고도 두려웠던 걸까. 다른 모진 말보다 이 말이 주는 데미지가 컸다. 대체 왜? 정신이 진짜 이상할까 봐? 

찬에게 들은 그 말이 행여 맞는 말이 될까 봐? 

그런데 정상이 대체 뭔고 말이다. 

 


사순이는 지금 이 넓은 땅에서 자꾸 걷겠다고 한다. 난데없이 산티아고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는 것인지. Chan이 내게 말했다. 



차 없이 가겠다고? 미쳤네.



산티아고 길에서는 모두가 걷고 있었고 이곳에서는 사순이만 걷고 있다. 



20-25km/day의 원칙에서 벗어난 적 없는 길이었다. 

그 원칙을 목숨처럼 지켜보니 제자리 걸음하는 기분이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도서관에서 만난 달팽이처럼. 



네가 이곳에서 경험하고 싶은 게 뭐야? Chan이 물었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든 그게 될 방법을 찾게 돼. 

그 반대면 어떻게든 안 될 방법을 연구해 내는 거고.

넌 뭘 연구하고 있어?




그때 사순이 건너편 방을 쓰고 있는 한 친구가 나섰다. 



내가 데려다줄게. 나 내일 오프야.

속도 어떻게 내는지 제대로 알려줄게. 






2023. 봄의 어느 날







++++

커버사진은 화산의 여신, 펠레(Pele); 하와이 신화에서 강력하고 다면적인 존재로,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측면을 동시에 상징함. 그녀에 대한 신앙과 전설은 하와이 주민들의 일상과 문화에 깊이 스며 있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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