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에서 날개 펴기(3)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만타레이(Manta Ray, 만타가오리)를 볼 거야.
파도가 어찌나 강한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진정하고 있는데 75세의 J가 사순이에게 말했다. 여행으로 빅아일랜드에 혼자 온 그녀는 아주 단출한 배낭 하나만 매고 사순이가 머무는 숙소에 들어왔다. 멘타레이를 보겠다고 보트 위에 선 것이 그로부터 3시간 후다. 생각보다 파도가 세니 작은 보트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급하게 먹은 음식을 다 게워낼 분위기다. 보트 안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녀는 이 와중에도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심지어 본인도 한바탕 속을 게워낸 후 기운이 없는데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오늘 우리는 만타레이를 볼 거야.
그녀는 막대 부표를 가슴에 안고 가장 먼저 바다에 풍덩 빠진다. 보트 끝에 서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는 사순이에게 괜찮다며 손짓한다. 혹여 만타레이를 못 봐도 실망하지 말라는 안내자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만타레이 떼를 보았다. 물이 몸에 닿은 지 십 오분도 채 안 되서다.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몸집이다. 큰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펄럭이는 그 생명체를 눈 앞에서 마주하니 꿈속에 있는 것만 같다. 방향을 바꿀 때 몸을 비틀어 회전하는 모습은 너무도 우아하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 팔과 다리를 스치고 입속의 뼈까지 세밀하게 보여주는 그 거리가 생경하여 사순이는 마침내 바다생명이 된 느낌이다.
쉽게 안 될 거라고 하지 마. 다음이라고 말하지 마. 지금이 전부야.
MZ 세대가 주축이 된 에어비앤비로 자리를 옮기고도 그녀의 말은 오랫동안 울림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인생을 조금 들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듣기엔 너무도 장대한 드라마다.
하나를 선택하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 이왕이면 열정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을 해. 대신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해봐야 해.
그녀는 만타레이를 안 봐도 사실 큰 상관이 없었다고 했다. 만타레이를 볼 거라는 그 희망과 설렘이 모두를 기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토하고 먼 산(반짝반짝 빛나는 섬이 보였다)도 수도 없이 보았으나 어쨌거나 만타레이도 보았다.
마지막 날 해가 넘어가는 해변에서 훌라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등장하여 점점 나이가 드는 그 무대에서 사순이는 그들의 언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들리는 순간을 보았다. 그때의 기록을 남겨 두었다. 주섬주섬 뒤져 찾아본다.
어릴 때는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응원하는 사람들 실망시키지 않고 잘하고 싶기도 하다.
기교가 늘어난 만큼 보기 좋은 공연들이 지나면 전달하는 언어가 한층 편해진다.
그냥 대충 뻗는 팔도 이야기가 되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은 삶 자체가 된다.
그 사람의 삶이 가장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나 이렇게 살았어. 이게 내 기쁨이야.
가능성의 행성을 여행하고 돌아가며 생각한다. 될 거라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가능성도 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다 거북이를 만났다. 몇 년 전 멕시코에서 방생한 그 새끼 거북이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물속에서 거북이는 생각보다 빨랐다. 힘을 빼고 파도를 타는 법을 알았다. 가만히 둥둥 떠 있는 듯하다가도 파도가 밀어줄 때는 거침없이 나갔다.
펼치기. 끝. 수성 미션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