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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Aug 21. 2024

태양은 너를 비추고 있어 (3)


태양은 너를 비추고 있어 (2)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침낭 안에서 나오기도 전에 이미 알았어. 해가 떴구나. 

머리끝까지 지퍼를 올리고 웅크린 그 안에서도 바로 알겠더라고. 

보지 않아도 빛이 드는 그 느낌 말이야.

 


어젯밤에 사람들이 노래 부를 때 나도 불렀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닥불의 연기가 눈에 들어가니 뭔가 모르게 나도 목소리를 내보고 싶었어. 이곳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소리, 그게 새삼스럽게 궁금했는지도 몰라.  



아리랑. 



그간 여기저기 다니며 한국인이라는 단지 그 이유로 누군가 그걸 부르는 걸 듣곤 했어. 다양한 국적이 섞인 자리에서 종종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내가 불러본 적은 없었어. 모닥불 앞에서 갑자기 왜 튀어나온 건지. 남자의 악기 소리 때문이었을까. 여하간 침낭에 반쯤 들어가려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아~리~라~ㅇ 하면서 시작했어. 정말 뜬금없었다고.



슬프게 들렸대.


밖으로 제대로 불러본 적 없는 그 노래는 내가 길을 다니며 들었던 아리랑의 느낌과 그리 다르지 않았나 봐. 그 노래를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어. 

남자 셋 중 둘은 우크라이나 사람이었어. 그들의 나라는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는데 그들은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갑자기 그 생각이 번쩍 들더라. 정작 그들의 노래는 슬프지 않았거든. 노래라기보다 짐승의 소리에 가까운데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읊조림이기도 했어. 난 그게 머리로는 이상했는데 몸은 편했어. 전 세계를 다니며 그들이 전하는 노래는 자신들이 보고 싶은 세상이었어. 




어떤 조건에 의해서 네가 기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우의 말이 떠올라. 목소리를 좀 가다듬더니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어. 



>인간은 수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 고통을 두려워하고 재판관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해. 잠을 두려워하고 깨어남을 두려워해.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고 냉혹함을, 광기를,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해.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 두려움의 가면, 두려움의 분장이라고 말할 수 있어.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니까. 스스로 몸을 던지는 일, 불확실함을 향해서 허공에 발을 내딛는 일, 단단한 토대 위에 자리 잡은 모든 확실성의 경계 너머로 걸어 나가는 일. 그걸 두려워해.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정말이지 오직 단 한 번이라도 감행해 본 사람, 운명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고 모든 것을 하늘에 홀연히 맡긴 채 미지의 길로 나아갔던 사람, 그는 자유를 얻었어. 그는 더 이상 지상의 법칙에 매이지 않아. 우주를 운항하는 별들의 윤무에 합류한 거야.<



헤르만 헤세인 거야, 여우 너?



내가 이 남자를 따라나서기 바로 직전에 읽었던 그 책에 있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잖아. 여우는 헤르만 헤세의 의식의 일부를 공유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AI? 미래에서 온지도 모를 생명체가 내 눈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 나는 별안간 아주 기쁜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어.  


전에 없는 기쁨의 노래가 마음에서 터져 나왔어. 그 노래가 자연스럽게 멀리까지 날아가는 모습을 우린 함께 바라보았어.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나는 남자 둘이 어젯밤에 다녀왔다는 그 바위 산에 가보기로 했어. 험준한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길은 결코 친절하지 않은 길이야. 상처 난 발에게는 더욱이. 

하지만 그 밤에 다녀온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해가 훤한 낮에 못 갈 이유가 뭐 있나 싶었어.

오히려 발은 신난 것 같더라고. 마음보다 먼저 달려 나갔으니까. 어찌나 의욕이 넘치는지 마음이 따라가기 바쁘더라고. 봉우리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어. 나의 두려움처럼 조그마해진 모습들이 날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어. 

깜깜한 밤, 내가 퍼올린 두려움은 햇살 아래에서 재미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며 속삭여.



전쟁터. 놀이터. 

놀이터. 전쟁터.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니 어떤 것이 창조되어도 이상할 게 없지.









사막에서 돌아와서 말을 탔어. 떨어질까 엄청 두려웠지. 말해서 뭐 하겠어.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잘해서, 두려움이 없어서 한 건 하나도 없어. 매번 호기심이 이긴 것 같아. 아주 간발의 차이로.  


한동안 말에 실려갔어. 탄다기보다 겨우 실려가는 느낌이야. 옆에 멋진 해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조금씩 속도를 내보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했어. 시간이 좀 지나니 바다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새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고 무엇보다 말의 움직임이 느껴졌어. 


속도를 내고 있는 내가 두려워지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어.



살아 있어서 좋다. 



말이 나를 던져버릴 것 같지 않았거든. 두려움이 걷히는 아주 찰나에 말이랑 완전히 붙은 느낌이었어. 아주 찰나였어.




이집트에서 마지막 날, 다리를 양쪽으로 번쩍번쩍 들면서 하늘을 날듯 겅충겅충 뛰는 낙타를 봤어. 항상 매여있는 신세에 어딘가 무기력하게 보이는 낙타, 이럴 수도 있는 거야? 나는 믿기지 않아서 내 눈을 의심했어. 

 

이게 말이 되냐고. 근데 나 진짜 봤어. 춤추는 낙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낙타를 봤어. 모든 가능성이 별처럼 떠 있었어. 선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건 어떤 이야기도 없는 가능성 그 자체였어. 









펼치기. 끝. 태양 미션 클리어. 





+ 전주에서 열린 공연을 마치고 저에겐 처음인 이곳, 전주를 여행 중입니다. <19일에 쓴 글이에요. 발행일을 맞추다 보니 오늘 올립니다> 공연 다음날 소리 움직임 명상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각자 움직이다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했는데요. 그 찰나의 접촉의 순간, 서로에게 가장 진심을 전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각자의 빛깔, 다 다른데 그게 연결될 때마다 재미난 이야기가 피어나요. 자신이 가진 빛깔 그대로 충분하더라고요. 무얼 더 애쓰지 않아도, 그 사람의 빛깔은 그걸로 충분했어요. 연결의 자취는 사라지지만 찰나에 상대에게 진심으로 주고자 했던 것은 서로에게 기억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별들이 만나고 부딪쳐 생기는 모든 길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걸 알려준 인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여담, 전주의 달빛 공연에는 라이테 작가님께서 오셨어요! 이 공간에서 글로만 만나던 분을 실제로 뵈니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작가님이 제게 주신 붉은 장미처럼 열정을 가진 삶을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낯선 경험과 공간에 마음을 열고 참여해 주신 작가님으로부터 저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존재만으로 빛이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저의 공연 소식에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가님이 계신 곳들도 가보고 싶습니다.




 


제대로 빛을 내는 별을 저는 계속 담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사림인지, 그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치가 있는지, 저는 그걸 계속 볼 거예요. 오늘 오랜만에 여행자 기분으로 한 선생님의 눈을 인터뷰했어요. 눈이 담고 있는 세상, 그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예요.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어요.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날 거예요. 그 에너지 기쁘게 다 받으세요. 당신은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요. 



미안해하지 말고 기쁘세요. 최고로 빛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라이테 작가님은 미인이셨어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올리고 싶지만 옆모습으로 대체합니다. 이 사진을 찍어주고 멀리서 와 주신 강성희 님, 7년 전 아주 추웠던 프랑스에서 우연히 만난 그 고마운 인연에게도 감사드려요. 


브런치가 이어준 인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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