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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y 23. 2024

여백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완벽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동료, 친구, 연인, 타인에게 완벽을 구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통상적으로 완벽함은 더는 고칠 것이 없는 완전체를 일컫는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성장과 변화가 없는 멈춤 상태이다. 생명은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흐른다. 생명은 늘 변화하고 성장하고 진화한다. 완벽함이란 곧 생명의 자연 순환을 가로막는 가림막과 다를 바 없다.

 

 완벽한 어린이가 있는가. 완벽한 물고기가 존재하는가. 완벽한 새와 나무를 본 적 있는가. 완벽한 아이는 없지만 모든 아이는 완벽하다. 완벽한 꽃, 새, 나무가 없지만, 모든 꽃, 새, 나무는 완벽하다. 이것이 생명체 본질이다. 인간만이 완벽해지려고 한다. 인간만이 생명의 본질을 거스르며 완벽해지려고 애쓴다. (「이기적 감정 정리법」. 이지혜) 

 

 아장아장 걷는 아가는 완벽하게 아름답다. 때론 울고 넘어져도 여전히 아름답다. 아직 채 피어나지 않는 꽃잎은 피어나지 않아서 예쁘고, 활짝 핀 꽃잎은 피어나서 예쁘다. 생명을 다하고 떨어진 꽃잎은 또 그 자체로서 완전하다. 곧게 자란 나무는 곧아서 완벽하고, 삐뚤삐뚤 자란 나무는 비뚤어서 완벽하다.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생명체의 아름다움이다. 생명 그 자체의 본질은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연약한 날갯짓으로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와 박제된 나비의 완벽함은 다르다. 완벽함은 결국 박제된 나비가 아니라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는 살아 숨 쉬는 나비를 일컫는다.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 속에 흐르는 생명에게 멈춤을 조르는 것이다. 아이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 내면에 흐르는 성장 에너지의 억압이다. 연인에게, 또 배우자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그들답게 살아갈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자신이 요구하는 만큼 상대가 완벽하게 따라 주지 못할 때,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긴다. 힘의 강약이 서로 동등한 인간관계에서 완벽함을 요구받더라도 거절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많은 인간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강자와 약자가 있게 마련이다. 직장 상사와 부하. 시부모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힘의 역학관계가 보이지 않게 늘 작동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연인이 서로 끌리는 이유는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려 할 때,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완벽함이란 감옥에 스스로 가두었다. 그래서 병들고, 몸이 아프고, 고단하고, 슬프다.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을 쥐어짜는 꼴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되레 아름답다. 모든 생명체는 변화와 성장 과정에 있으므로 아름답다.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불완전 속에 완전함을 볼 수 있고, 모자란 속에 완벽함을 이해할 때, 당신은 더 이상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완벽을 추구하여 부와 권력, 명예를 얻었다. 완벽은 매혹적인 에너지를 장착했다. 인간이 이러한 기운에 이끌리는 건 당연하다.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갉아 먹게 된다. 간단하고 사소한 일조차 여러 차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면 늘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하려면 매양 평범한 일상을 놓쳐 버리기 일쑤이다. 완벽주의자에게 행복한 삶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이다. 

 

 미국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완벽주의는 우리가 질질 끌면서 걸치고 다니는 20톤짜리 갑옷이다. 우리는 완벽주의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방해한다’라고 말한다. 

 

도종환 시인의 '여백'이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말없이 나무를 받아안고 있는 하늘처럼 우리네 삶에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은 구하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다. 끊임없이 비움과 이완을 반복하고 스스로 궁구해야 한다. 질주하는 일터에서, 고단한 삶의 길목에서 틀에 맞추어진 기성복을 벗어 던지고 나만의 고요한 여백을 만들자. 언젠가는 바쁨이 멈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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