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에서 ‘아름’의 숨은 뜻은? 유튜브 숏 영상 제목이다. 코미디언 정형동이 퀴즈를 내고 출연자들이 응답하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는 ‘아름’의 뜻에 너무 놀랍다고 한다. 15세기 석보상절에 나오는 아름답다에서 ‘아름’의 뜻은 ‘나’를 의미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는 뜻이다. 내가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다. 내 가치관에 부합된다는 것은 내 마음에 들며,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은 보기 좋다는 뜻이며, 보기가 좋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다. 이런 변천 과정을 거쳐 ‘아름답다’라는 낱말이 탄생 됐다. 다른 한편, 한자 아름다울 미(美) 자로 그 어원을 해석하기도 한다. 미(美) 자는 양(羊)과 큰 대(大)로 구성된 문자다. ‘살찐 양’인 셈이다. 포동 포동 하고 살찐 양을 하나님 제물로 바친다는 게 인간 참된 도리이다. 이를 아름답다고 한다.
사람은 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걸까?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벚꽃이 활짝 핀 거리 찾아다니고, 홀린 듯 예쁘고 진기한 음식을 찾아 카메라에 담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짓는 걸까. 이 모든 것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시 가고픈 이유는 풍경을 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 아쉬우며, 사람들과 보냈던 그 찬란한 시간이 너무나 순간인 까닭이다. 그래서 우린 여행지에 돌아와 사진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순간을 불러내어서 추억한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할 때, “와! 좋겠다.”“참 좋을 때다.” 라고 말하곤 한다. 결혼하는 젊은 그들이 부러운 게 아니라 지나간 내 청춘에 아쉬움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의 아름다움에도 이끌린다. 결혼 후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관능의 아름다움과 파릇한 생기는 탐스럽게 아름답다. 시간 흐름에 따라 그 아름다움은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고 무덤덤해지고 결핍도 생긴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의 표현이다.
아름다움은 사람 마음과 사물이 결합해서 탄생한 신생아와 같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주광첸). 아름다움 속엔 사람 감정과 사물 이치가 들어 있다. 노송을 감상할 때 노송의 푸른 기상은 사물 이치이며, 노송의 절개는 사람의 감정 투영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감정을 투영해서 만든 것이다.
현대 미학의 큰 스승 주광첸은 미의 감상은 플라토닉 사랑과 같다고 한다. 플라토닉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목적 없이’ 사랑하고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이 나의 천사가 됐다. 그 남자와 그녀는 서로 이상형이다. 당신 눈에 보이는 그 남자와 그녀는 한없이 멋지고 아름답다. 이는 당신이 만들어낸 이상형을 상대방에게 투영한 것이다. 따라서 눈앞 연인은 천사 모습을 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대상은 언제나 ‘예술화를 거친 자연’이다. 미의 감상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자연에 예술화를 덧입힌 것이다.
흥겨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축제에 참석하여 함성을 지르고, 고요함 속에 자연의 소리도 듣기를 바란다. 이 또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나는 좁고 얕다. 아름다움은 넓고 깊다. 그러하니 아름다움을 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