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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현상학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by 조융한삶 Feb 28. 2025



[개소리]



2002년 안산시

수암동 노리울 작은 마당에서는

항상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웠다.



타고난 유당불내증 덕분에

학교에서 받은 흰우유는 언제나 강아지들 몫이었다.



강아지들은 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우유를 먹었고,

배는 금세 터질 듯 빵빵해졌다.



나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개소리를 냈다.

“왈왈”



12살 초딩의 ‘왈왈’ 소리엔

‘싸우지 말고 천천히들 먹어’ 라는 다정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의도와 생각을 소리에 담으면

내 마음이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언어회]



생선마다 살수율이 다르다.

살수율이란, 회를 떴을 때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살의 수량‘을 뜻한다.



광어의 살수율은 50% 정도 된다.

뼈, 내장, 비늘, 대가리 등을 제거하면 절반은 버리게 된다.



50%는 꽤 높은 편이다.

대방어는 40%, 도미는 30~35%, 우럭은 25% 정도다.    



-



의사소통에도 살수율이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은

특별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그들은 꼬리(?) 끝에 있는

‘큐’를 서로 이어 정보를 교환한다.



큐를 연결하는 행위를 ‘샤헤일루’라고 부르며,

이때 정보는 100% 전달된다.



생각, 느낌, 정서 등 모든 정보가

100% 그대로 전달되어 교감하고 소통한다.



살수율 100%, 의미 결손 0%다.    



-



그에 비해 인간 언어의 의사소통은

필연적으로 의미가 결손된다.



전문가는 70% 정도, 일반인은 30~50% 정도,

훈련하지 않으면 10~20% 수준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20%가 너무 낮은 수치라고 생각된다면,

주변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을 떠올려 보자.



인류의 언어는 비루할 정도로 형편없고,

비참할 정도로 한계가 분명한 수단이다.



아무리 잘 꿰매고, 포장해도,

의미는 표현 바깥으로 자꾸만 누수된다.



언어능력과 소통능력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간극에서

오해가 발생한다.





[오해 X 오해]  



1. 애석한 해석



최근 연애 상담을 해줬다.

(지 연애도 못하면서 꼴에)



당사자들은 모두 내 지인이었고,

그 사이에서 꽤 난감했다.



한쪽이 별 의미없이 한 행동을

다른쪽은 호감의 신호로 읽어들였다.



한쪽이 별 생각없이 건넨 호의를

다른쪽은 애정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한쪽이 별 고민없이 보낸 연락을

다른쪽은 관계의 발전으로 해석해냈다.



한쪽은 마음을 준 적이 없었고

다른쪽은 마음을 점점 키워나갔다.



결국 한쪽은 미안함으로,

다른쪽은 실망과 허탈함으로 끝났다.    



-



관심의 기울기가 엇갈리며 빚어내는 착각들은

일상에서 매일같이 일어난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의미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본능으로 착각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2. 의도의 오독



‘사람’의 본질은 ‘관계’이고, ‘관계’의 본질은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의 본질은 ‘마음’이다.



마음은 섬세하게 세공한 유리 같아서,

조금만 다쳐도 쉽게 닫혀 버린다.



일단 마음이 꽉 닫히면

마치 꼬막처럼 잘 열리지 않는다.



마음을 강제로 열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관계는 꼬인다.



이때 건네는 말들은 공허한 혼잣말,

닿지 않는 독백에 불과해진다.    



-



만약 의도가 선함에서 비롯되었다면 

억울함은 배가 된다.



오해의 제공자는 애석하게도 

해명의 기회를 상실한다.



이미 마음을 닫은 자, 오해하기로 마음 먹은 자에게

상대는 배척해야 할 죄인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라는 구절은 비겁한 변명이 되고,

억울함을 제대로 소명할 수 없는 억울함으로 인한 억울함은 연쇄되며 증폭된다.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납골당에 갇혀 있을까.



오해는 결국 오해로 귀결된다.   




3. 곡해의 곡예



이쯤 되면 소통의 본질은

‘마음’이 아니라 ‘오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해’의 본질은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오해는 언제나 확신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될 거라는 확신,

친하니까 괜찮다는 확신,

너도 나와 같은 거란 확신.



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진실이 있다.

인간은 ‘오류’하는 존재라는 진실.



-



확신은 언제나 다양한 편향에 담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



표정 하나에, 말투 하나에, 손짓 하나에,

많은 의미가 확대되고 축소된다.



선택 편향, 확증 편향, 과지각 편향 등

여러 오류들을 제대로 여과하지 못하면 



그릇된 근거로 상황을 판단하게 되고,

오판은 누적되어 결국 커다란 패착이 된다.



그러므로 정황증거, 상황증거, 심적증거 등 여러 신호들을

가능한 보수적으로, 방어적으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섬]



그리하여 한 사람은 하나의 '섬'이다.



누군가의 사유지에 

방문하려면 방문증이,

출입하려면 출입증이,

이주하려면 이주증이, 필요하다.



한 사람은 하나의 '문화'이기에

당신의 방문을 기꺼이 환영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아직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스스로를 귀빈으로 착각한다면

상대는 당신을 손님이 아닌 침입자로 느낀다.



-



마음의 각도는 언제나 굴절된다.



날씨, 기분, 컨디션, 자존감, 수면 상태, 식사 메뉴에 따라서도

자아는 시시각각 교체되며,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을

축소하고 확대하고, 숨기거나 부풀리며, 왜곡하고 편집한다.



인간은 누구나 변덕스럽고,

아 다르고 어 다른 복잡한 존재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일까.    



-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작업이

당연히 단순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개와 고양이만큼 다르고,

같은 성별끼리도 비숑과 리트리버만큼 다르다.

(심지어 같은 비숑끼리도 다르다.)



언어와 겉모습으로 표현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근거들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어느정도 세척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기질, 환경, 성격, 경험, 애착, 그림자, 열등감, 콤플렉스, 심리적 결핍 등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여러 차례의 직접적인 ‘대면’과 

특별함의 필요조건인 ‘시간의 절대량’이 요구된다.    



-



관계는 관개 시설처럼 

유지 및 보수가 필수다.



오해는 관계의 본질이기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오해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관건이다.

오해를 잘 해결하는 관계와 그렇지 못하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주둥이를 잘못 놀린 죄로 15년 동안 감금당한다.



풀려난 후, 복수에 눈이 뒤집혀 날뛰다가

마지막엔 본인의 잘못을 참회하고



스스로 혀를 뽑는다.



-



그렇다면 내 언어의 살수율은 얼마나 될까.



민망하게도 말로 먹고 살고 있지만,

매일 수많은 오해를 셀프로 생산한다.



말로 어떤 죄를 지어왔을까.

얼만큼의 오해들을 생산했을까.    


새치혀로 누구에게 상처줬을까.

얼마나 덧없는 말들을 내버렸을까.



나라는 인간은 아마도

평생 반성만 하다가 죽을 듯하다.



오대수처럼.





[요루]



요즘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요루를 쓰다듬는다.



내게 몸을 맡기고 쉴 새 없이 부르는 골골송의 파동을 들으면

이게 바로 요루가 원하는 방식임을 직감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담아 쓰다듬더라도

요루가 싫어한다면 그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요루의 움직임에 맞춰

수화하듯 손끝마다 ‘사랑해’를 담아 요루를 어루만진다.



부드러운 하얀 털 사이사이에 사랑을 새긴다.



-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진짜 헤아림과 사랑과 배려임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



삶을 너무 많이 흘리지 않고 살고 싶다.



-



너를 보면서 하는 모든 말 사랑한단 뜻이라

쉬운 인사말 그 한마디도 내겐 어려운 거야.


- 성시경, 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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