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퐁피두 센터는 모더니즘 건축의 핵심 사조 중 하나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 원칙에 따라 설계되었다. 철골 구조, 배관, 환기 시스템, 엘리베이터 등 건물의 뼈대와 내장이 외부로 드러나 있고, 기능에 따라 각각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독특한 건물의 내부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의 논쟁적인 작품들로 채워지는 것은 운명적이었다. 퐁피두 센터 개관 전날, 설계자인 리처드 로저스가 비를 맞으며 건물을 바라보던 중 한 여인이 우산을 씌워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저스가 설계자임을 고백하자, 여인은 우산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떠났다. 혁신의 충격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파리의 클래식한 석조 건축들 사이에 철과 유리로 된 기계 덩어리는 마치 도심 한가운데 세워진 공장 같다.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거대한 공장, 퐁피두 센터의 혁신은 겉모습에 그치지 않는다. 미술, 영화,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예술을 아우르는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이라기보다 복합 문화공간에 가깝다. 투명한 외벽 너머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거친 미완의 공간에서 지금도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동시대(contemporary) 미술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퐁피두 센터 특별 전시관에서는 현재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전시가 진행 중이다. 1917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 뒤샹이 전시한 상업용 소변기는 현대 미술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상은, 프랑스 소장가들을 중심으로 동시대 미술에 기여한 젊은 작가들에게 수여된다. 4명의 최종 후보 중 한 명이 곧 선정되어 퐁피두 센터에서 개인전의 영광을 누리게 될 예정이었다.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예술가만 있을 뿐."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 퐁피두 센터에서는 예술과 나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다. 엄청난 팔로워를 보유한 '모나리자'와 함께 셀카를 찍는 대신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은 작가의 '살아있는' 전시를 보기 위해 퐁피두 센터를 찾는 이유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인간은 특별히 장식된 틀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을 본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퐁피두 센터라는 프레임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나 전 세계적인 현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생소한 이름의 작가나 낯선 작품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전시 마디마디에 놓인 창 밖 풍경에 관심을 뺏긴 관람객들은 내가 퐁피두 센터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모든 것을 예술로 포용하려는 시도와, '모든 것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다정함이 이곳에 있다.
나는 예술에 대해 다소 편협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내게 예술은 소묘, 회화, 조각 같은 전통적인 미술 활동들을 결코 넘어서지 않았다. 똑똑한 척하며 제7의 예술이니, 행위 예술이니 하는 흰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상과 확연히 분리시킬 수 있는 것만이 진짜 예술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전통적인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변두리 출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파리에 와서 루브르 박물관의 웅장함이나, 상업 갤러리의 엄숙한 분위기 앞에서 한껏 소심해졌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새 줄곧 좋아해 온 19세기 서사 회화나 유화를 포기하고,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작품이나 괴짜들의 생소한 작품들을 내 취향이라며 소개하고 있었다. 이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왜곡된 대화와 자기 합리화를 거쳐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퐁피두 센터의 상설 전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원작은 이미 훼손되어 사라진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 아니 '샘(fountain)'의 복제품 앞에서, '이게 예술이라고?' 하는 마음이 비죽 튀어나왔다. 사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선언을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100년이 넘은 작품이 생생하게 말을 걸어온 그날, 나는 비로소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