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입는다

by Yeongseop
스크린샷 2025-01-27 11.21.54.png Image via @broodthaers on Instagram

1월의 파리 거리는 겨울의 짓궂은 날씨와는 무관하게 생기 있고 화려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쇼가 열리는 동안, 거리에는 전 세계의 스타일리시한 인플루언서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남성복 패션쇼가 열렸다. 쇼장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들의 차림새로 올해의 트렌드를 예상해 본다. 장식이 거의 없는 파스텔톤의 옷가지를 겹겹이 레이어드 하거나, 바지 위에 치마를 덧입는 방식, 혹은 흐드러진 질감으로 만든 두 개의 치마를 양쪽 다리에 입은 듯한 스타일도 보인다. 올해도 미니멀리즘과 젠더 뉴트럴의 디자인은 여전하다. 한편, 파자마 위에 코트를 걸치거나, 요가복을 활용한 오피스룩처럼 혼란스러운 앙상블도 종종 눈에 띈다. 패션의 수도 파리에서조차 규범을 벗어나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아방가르드한 시도들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업계는 이제 옷감을 재단하는 것보다 사회와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저널리즘도 브랜드의 신소재 개발과 제로 웨이스트 같은 키워드로 지루한 이야기를 피한다. 현대 사회의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입는 기능적 목적을 넘어선다. 패션은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잇는 매개체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관계를 구축한다.

프라다 그룹이 설립한 실험적이고 젊은 감각의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는 세대를 초월해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전개하는 독창적인 뉴트로 감성은 수많은 서브 트렌드를 창출하며,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새롭게 상기시켰다. 모두가 기다려온 미우미우의 이번 2025년 봄 패션쇼에서는 '진실 없는 시대(The Truthless Times)'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신문이 관객들에게 배포되었다. 그 속에는 슈몬 바사르의 에세이 "우리는 '엔드코어(Endcore)' 시대에 살고 있다(We're in the Endcore Now)"도 포함되어 있었다. 엔드코어란 정보 과잉과 진실의 모호성이 만연한 디지털 세계에서, 모든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끝나지 않은 종말의 상태를 뜻한다. 미우미우는 바사르의 글을 차용하며 각종 코어-트렌드의 종말을 예고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소비자를 사랑스러운 사춘기 소녀 이미지에서, 거짓 뉴스와 알고리즘이 강요하는 아이디어에 맞서는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작년에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각종 코어 논쟁을, 얌전하고 단정한 매력이 돋보이는 드뮤어(Demure) 스타일이 한동안 잠재웠다. 이 새로운 유행은 외형적 스타일뿐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내면적 태도도 포함한다. 이에 미우미우는 선언한다. 패션에서 강력한 트렌드의 상실은 곧 정체성의 소멸이다.


"유행 속에서 단지 유행만을 보는 사람은 어리석다." 19세기 작가이자 비평가인 오노레 발자크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은 사유의 결여를 드러내며, 이런 태도는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잃게 만든다고 보았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귀족주의가 흔들리던 당시 프랑스에는, 샤를 보들레르와 알베르 카뮈가 열렬히 옹호하는 댄디즘(Dandysme)이 유행이었다. 흰 셔츠, 몸에 꼭 맞는 재킷과 바지, 슬림한 가죽 부츠, 그리고 가능한 모든 장식을 배제한 스타일은 "살기 위해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스타일이 밥 먹여주냐 묻지만, 그럼에도 스타일 때문에 입맛이 돈다고 말하는 사람들. 댄디들에게 옷을 입는 행위란 평범하고 맹목적인 일상과 자신을 분리하려는 시도였다. 댄디들은 무비판적이고 개성 없는 삶을 경멸하며,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자신의 자아를 재발견하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댄디즘의 출현 이후로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은 생각보다 복잡한 내면적 의미를 형성해 왔다. 더는 개인의 어떠한 이야기도 담지 못하는 오늘날의 패션 트렌드는 이제 종말론적 논의 위에 서있다. 패션이 다시한번 '보여지는 것'에서 '표현하는 것'의 지위를 되찾고, 단순히 아름다운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우아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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