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국밥 같은 것

by Yeongs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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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대학생으로 파리에 돌아왔을 때, 나는 걷고 숨 쉬는 방법마저도 새로 배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내게 프랑스는 개인의 작은 경험까지 평가하며, 사소한 기술에도 이름을 붙여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나라였다. 미처 예술가가 되지 못한 이들은 비평가가 되어, 잘난 것과 못난 것을 논하며 즐거움을 찾았다. 철저한 평가 문화는 식탁 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먹고 마시는 일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배우지 않으면 중년이 되어서도 남의 추천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잡지 가이드에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맛을 배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재정적 여유가 필요했지만, 그런 여유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송금을 기다리는 대학생 시절에도, 불안정한 수입의 프리랜서였을 때도, 내달 월급을 기다리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에는 네 시간의 식사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 다음 수입이 들어올 때까지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사치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음식을 통해 프랑스와 연결되고자 한 간절한 몸부림이었으니까. 물론 절제에 익숙해지는 것도 지나치면 곤란하다. 신을 만나기 위해 꼭 파리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으니까.


파리에는 비용의 장벽 없이도 서양 음식의 본질을 탐구할 기회를 주는 장소가 하나 있다. 150여 년 전 이곳에서 처음 탄생한 부이용(Bouillon) 레스토랑이다. '육수'를 뜻하는 이름처럼, 부이용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내장이나 부속물을 활용해 만든 수프를 저렴하게 제공하던 데서 시작되었다. 노동자와 서민들이 즐겨 찾던 이 프랑스식 대중식당은 20세기에 들어 더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며 부르주아와 예술가들도 찾는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부이용의 메뉴들은 마요네즈 달걀, 대파 비네거 소스 요리, 송아지 머리 요리처럼 오래 끓인 국물 요리는 아니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처럼 향수를 자극한다. 할머니의 집밥을 떠올리게 하는 전채, 메인, 디저트를 포함한 식사는 20유로대라는 부담 없는 가격에 제공되며, 모든 메뉴가 햄버거 세트와 아뮤즈 부쉬(Amuse-bouche)로 시작하는 고급 코스 요리 사이의 커다란 공백을 메우는 프랑스 요리의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음식이란 무엇인가? 이탈리아 요리와는 무엇이 다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부이용의 접시에 담겨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식, 말하자면 한국인에게 국밥이 가진 정서와 비슷한 것이다. 이는 특별한 맛이나 재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대전 이후 수백 개의 부이용이 미국식 그릴룸으로 대체되었지만, 1896년에 설립된 부이용 샤르티에(Bouillon Chartier)는 유일하게 그 명맥을 이어왔다. 예약을 받지 않는 이곳은 항상 건물 안팎을 가득 메운 긴 줄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뱀처럼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들어가면, 개업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장식된 웅장한 홀과 마주하게 된다. 높은 천장에서 드리우는 샹들리에의 빛 아래, 구리 모자 선반과 세월의 흔적이 담긴 목재 가구,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된 테이블보가 공간을 채운다. 검은 정장과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은 놀라운 손놀림으로 홀을 빠르게 누비며 활기를 더한다. 여전히 다양한 계층, 직업, 국적의 사람들이 좁은 테이블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마치 졸라의 소설 속 시장 풍경 같은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19세기말, 짧지만 찬란했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낙관적인 아름다움이 이곳에 살아 있다. 최근 파리에서는 부이용 레스토랑이 점차 늘어나며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려는 복고풍 유행에 그치지 않는다. '국물도 없는' 뻑뻑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그리고 지나치게 효율적이거나 장식적인 음식들 사이에서, 부이용은 오래된 기준을 새롭게 제시한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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