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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톨 Dec 06. 2016

평범한 한량의 하루

평범한 한량의 캐나다살이

오늘도 기분이 마구 널을 뛴다.


한동안 장을 보느라 여기저기 쓴 돈이 많아 외식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있고 오늘이 바로 그 다짐의 첫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스타벅스 프라프치노 반값 행사를 봐 버린 것.


계속 고민하다가 그래도 스타벅스에 가서 공부를 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 그것 또한 남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며 집을 나섰지만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컴퓨터를 하며 놀고 있다. 다행히 솔티드 카라멜 프라프치노는 맛있다. 그럼 됐어.



아침엔 학원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또 역시나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자긴 백수라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걸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도 백수이고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 여길 온 건데 지금 뭘 하는 거지? 오후반을 알아봐야 하나? 100번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린다. 헌데 신기하게도 학원에 가면 그런 기분이 사라진다. 가뜩이나 오늘은 눈이 와서 대략 30%의 학생들이 결석한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하니 꼭 중고등학교 때 시험 끝나고 교실에서 커튼 치고 영화 보는 그런 분위기였다. 부담스러운 월요일 발표도 잘 마치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집에 올 땐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그리고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낮잠을 자면 그것이 바로 행복! 결국 아침에 말한 행복한 백수가 나잖아?



하지만 학원에 다녀와서 1-2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밴쿠버의 낮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밴쿠버는 좀 어떤 것 같아? 누군가가 물어보면 요즘은 딱 2가지로 대답한다.


1. 해가 너무 일찍 져.(오후 4시면 이미 어둡다)
2. 일주일에 6일은 비가 와.

 


그렇다. 누군가가 나처럼 몇 달만 살아보겠다고 밴쿠버에 온다면 겨울은 결코 추천해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내년 여름까지 기다렸다 오기에는 세상(아마도...고용의 현실)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어쨌든 나는 우울 터지는 이 겨울의 밴쿠버에서도 잘 살아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또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소중한 내 우산이 부러지고 만 것.

몇몇 공산품이 우리나라에 비해 질도 좋지 않고 많이 비싸다고 들어서 이런 일이 생기면 덜컥 겁이 난다. 조금 과장하면 양말에 구멍이 난 지지난 주에도 심장이 쿵-내려 앉았다. 근데 이번엔 하나 밖에 가져오지 않은 우산이 이렇게 부러지고 만 것이다. 2주 뒤 친구가 밴쿠버에 오기로 해서 그때 여분의 우산을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2주 동안 꼼짝없이 볼품없는 우산을 들고 다니게 생겼다. 초등학생 때처럼 작은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경험을 하고 있다.


평범한 한량의 하루. 하지만 이 또한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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