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톨 Dec 27. 2016

원점

영어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캐나다 살이

꿈만 같던 일주일이 지났다.

친구가 놀러와서 같이 밴쿠버와 미국을 여행했다.


이것도 일상이라고,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힘이 든다. (괴롭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친구가 한국 음식을 조공해줘서 식량창고가 지금은 가득 차 있다.

근데 여기서 최소 몇백 끼는 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앞으로 뭐 먹고 어떻게 살지 ㅠ_ㅠ


지난 주 방방 뜬 기분으로 끄적였던 포스팅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 나올 정도다. 한달간 열심히 쌓고 이루고 다듬어둔 것이 모조리 다시 원점이 된 기분이다. 집만 있으면 뭐든 해결된 것 같다더니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얼른 다음달에 등록할 학원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또 사람다운 삶이 가능해질 것 같다. 한편으론, 에휴 또 돈을 쓰고 무언가를 해야만 생활이 굴러가는구나- 싶어서 소비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 영어공부에 대한 이야기


여행을 하는 일주일 간 영어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고 살았더니 그동안 그닥 는 것도 없지만 그저 그랬던 영어실력마저 다시 원점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지내다 보니 그런 목표마저 없다면 몇달 뒤 아무것도 없이 이곳의 생활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은 막막함에, 그리고 돌아가서 나의 이 시절을 가치 있었던 기억으로 떠올리기 어려울 것만 같은 불안함에 영어공부를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일찍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라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최소 몇 달은 이곳에서 살아보겠다고 와놓고서 오자마자 일찍 돌아가기 위한 목표를 세우다니. 아이러니하지만 한달 전 나는 진심으로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영어를 많이 공부해야만 내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고.


그후 영어공부를 하는 방법론에 대한 것만 얼마나 찾아봤는지 모른다. 시작이 반이라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먼저였다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걸 하면 좋겠다 이걸 하면 어떨까 하는 것따위의 "공부 계획"이나 "어학연수 후기"를 매일 읽으며 마음의 준비 상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또 내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비록 내가 캐나다에 있지만 영어를 말하는 환경에 노출되기가 사실 정말로 어렵다는 것이다. 오기 전에는 마트에 가고 식당에 가고 도서관에 가는 것만 해도 어쨌든 영어를 말해야 가능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했다면, 오고나서는 마트에 가고 식당에 가고 도서관에 가는 동안 영어를 말하는 시간을 모두 합해도 하루 몇 분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확 실감 나니 무서워졌다. 


'한국에 있는 것처럼 지내다 가도 충분히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될 거야. 나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으니까. 영어랑은 상관 없어도 돼. 집에서 종일 TV만 보고 책만 보더라도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 것과는 정반대로, 그러면 왠지 안될 것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지금 1) 학원/액티비티 2) 회화 클럽 3) 전화영어 4) 팟캐스트 등 여러 가지 영어를 접하기 위한 방법을 실험쥐에게 하는 것마냥 찔끔찔끔 실험해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예능을 보고, 친구와 카톡을 하고, 독서를 하는 등 한글을 끊임없이 영어보다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줄일 수 있을까? 말은 이렇게 해도 그럴 생각이 당분간은 없어 보이는데.




# 작은 반성과 깨달음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바뀐 것이 있다. 오기 전의 나는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최소 몇 달간 다녀온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며 그들이 영어를 잘 못하면 왜 못할까? 하고 너무나도 뻔뻔하게 의문을 가졌고, 나는 어학연수를 안갔으니까 그들보다 못해도 괜찮다고 당당하게 생각했다. 그런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어학 공부에서마저도 환경만큼이나 노력의 중요성이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위기를 느끼는 것과, 나를 다독이는 것 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지내고 있다. 여기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누가 말했던가? 살아보지 않고는 모른다. 20대 후반의 백수가 유유자적 100% 여유만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은 몇 백년 전이 아니곤 없지 않을까. 이곳에서 만난 또래의 다른 나라 친구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달력을 바라보고 어느 땐 그래도 아직 돌아가서 재취업을 할 수는 있겠지 싶다가도, 극심한 취업난(이건 매년 보는 기사지만) 관련 기사를 보면 클릭하지도 못할 만큼 새가슴이 되어있기도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해방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