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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톨 Jan 08. 2017

살아가고 있는 느낌

미용서비스를 받고 짠해진 캐나다살이

와이파이의 노예였구나. 어제부터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주말인데도 뒹굴거리는 편안함을 살짝 포기하고 집밖으로 나왔다. 세수를 하고 1분 준비하고 1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카페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 반, 시럽이 없어서 아이스라떼에 설탕을 넣어봤는데 다행히 달짝지근한 맛이 감돌아서 또 감사한 마음 나머지 반. 

외국생활을 앞둔 사람이 출국 직전 하는 일 중 하나에는 미용실에 다녀오는 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저렴하고 + 익숙하고 + 자국민에게 편안한 서비스를 마지막으로 몽땅 받아가는 일 또한 옷가지를 짐꾸러미에 꾸역꾸역 하나 더 챙겨넣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몇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으로 연명하던 갈색머리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충 살기로 결심한 나는 미용실에서도 잘 안해준다는 '흑발'로 새까맣게 염색을 해버렸다. 그냥 생머리는 영 힘이 없어보일 것 같다는 이유로 끝부분에 셋팅펌까지 했다. 이미 전부터 잔뜩 손상된 상태였던 머리는 더이상의 시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는지 1) 이렇게 까만 머리가 안어울릴 수 있나 2) 이렇게 뻣뻣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정도로 최악인 상태가 되었고 어쩔 도리가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과 함께 이곳에 도착해버렸다. 

두 달을 버텼다. 이곳에서 와서 사진을 잘 찍지 않았던 이유가 근사한 풍경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뻣뻣한 머리와 어색한 표정의 조합으로 서 있는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서였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큰 결심을 하고 미용실에 방문했다. 삶의 질을 조금 더 높여보겠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캐나다의 미용 서비스 비용은 한국의 2-3배 정도 되는 듯하다. 
시간 많은 나는 열심히 검색을 해서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마침내 찾았다. 내가 방문한 곳은 VCC라는 미용 관련 과목 전공을 갖고 있는 밴쿠버의 한 컬리지였다. OJT 처럼 전공생들의 실습 대상이 되는 대신, 조금 덜 전문적이기 때문에 살짝 저렴한 가격. 과감한 변신을 할 것도 아니고 최소 몇 달 이상은 배운 사람들에게 하는 거니 맡겨보자! 하고 예약 후 도착했는데 웬걸,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전문적인 느낌이었다. 골방에 가둬놓고 머리를 해주는 게 아니라 웬만한 미용실보다 널찍한 장소. 누가 봐도 이건 전문적인 미용실!

내 머리를 담당한 학생은 배운지 2년이 되었다고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머리를 엄청 느리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감겨주고 자르고 확인하고 또 잘라주었다. 한국에선 보통 컷트만 할 경우 샴푸 서비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머리도 감겨주네? 1차 만족.  30분이면 다 잘랐을 법한 머리를 2시간에 걸쳐서 신중하게 잘라주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시간이 많았던 나는 갑자기 너무나 너그러워져 2차 만족. 중간중간 교수님으로 추정되는 분께 칭찬도 받고 요구사항을 재확인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여 잠이 솔솔 왔다. 

그리고 끝. 답답했던 머리카락을 절반 가까이 잘라내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만족스럽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샴푸 서비스는 컷트 비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나는 네가 학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 너는 정말 훌륭한 실력을 가졌어." 

잔뜩 칭찬해주고 나왔다. 

합리적인 가격에 학생과 고객 모두에게 좋은 시스템, 정말로 괜찮아 보인다. 비밀스럽지도 않고 비전문적인 느낌도 없어서 만족도가 더욱 높았던 듯하다. 분명 완벽한 서비스까지는 필요치 않지만 이렇듯 각자의 니즈가 일치하는 분야가 드러나지 않은 곳에 많이 있을텐데. 그리고 만족스러웠던 서비스와는 별개로, 나는 또 내가 이곳을 여행자가 아니라 정말 살러 온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언제든 여행자가 되기도, 그냥 평범한 (시민권은 없지만)시민이 되기도 하는 이곳. 그리고 지금 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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