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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un 23. 2021

아빠, 내 마음이 깨졌어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유치원 잘 다녀왔는지 물었다. “정승주(가명)가 나랑 친구 안 한대.” 아들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승주랑 싸웠어?”

“아니.”

“그런데 승주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도 몰라. 갑자기 그러던데?”


적당한 위로의 언어를 찾고 있는데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마음이 그래서 깨졌어.”


승주는 아들에게 유치원 생활을 물어볼 때마다 언급돼온 친구 중 하나다. 아이는 승주랑 어떤 놀이를 했다거나 승주랑 뭐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모에게 절친의 존재를 알려왔다. 아이가 친구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기억이 많기에 승주의 절교 선언은 부모로서도 아팠다. 어떤 이유가 있긴 할 텐데 아이는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이 낯선 경험을 표현할 문장을 찾던 아이는 ‘마음이 깨졌다’라는 말을 만들어 부모의 마음도 깨뜨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황당하게도 승주가 아들에게 직접 말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서서히 나를 밀어내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 달아나는 어른의 절교가 얼마나 아프고 잔인한지 알아서다. 나 혼자서만 우정의 존속을 강하게 믿는 상황만큼 비참한 게 있을까. 차라리 승주처럼 딱 부러지게 말하고 떠나가 주면 감사하다.


스무 살 이후 경험한 몇 번의 절교는 모두 상대방이 나를 울타리 밖으로 티 안 나게 밀어내거나 그가 조용히 담장을 넘어 떠나는 식이었다. 곁에 친구가 없어졌음을 깨달은 건 늘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 치밀한 절교 방법의 후유증은, 오랜 시간 내가 나 스스로를 형편없는 인간이라며 평가절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 비하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어제 일처럼 슬프다. 떠난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아마도 아이는 승주와 다시 잘 지낼 것이다. 순수한 6세들의 세계이니, 서로에게 깊은 생채기를 내고 다신 안 볼 것처럼 뒤돌아서는 불상사를 만들진 않을 것이다. 깨진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봉합되고, 아이는 다시 부모 앞에서 신나게 승주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도 잔인한 어른의 절교를 경험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땐 마음이 정말로 ‘와장창’ 깨지겠지. 성장의 필수 과정이라면 감내해야겠지만, 모난 성격의 아비처럼 그 쓴맛을 여러 번 맛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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