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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Sep 04. 2021

얘는 지가 알아서 잘 커요

테라스에 둔 식물 하나가 비실댄다. 진도로 태안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일주일 가량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다. 잎사귀가 바짝 마른 것이 물을 줘도 살아나지 않을 것 같다. 김부각처럼 둥글게 말린 잎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출근했다.


3년 전 집을 사면서부터 테라스는 내 담당구역이었다. 식물에 관한 기본 지식도 없는 상태로 여러 식물을 들였다. 잘 모르는데 게으르기까지 하니 결과는 뻔했다. 식물은 수시로 죽었고 테라스 한쪽에는 빈 화분이 쌓여갔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잘 죽지 않는 식물 위주로 사자’였다. 지금 사망 직전에 이른 이 녀석도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길래 데려온 나무(사장님이 알려준 이름은 까먹었다)였다.


2년 동안은 잘 자라줬다. 가끔 물 주는 걸 잊어도 나뭇가지에 달린 잎에서는 힘이 넘쳤다. 블루베리처럼 생긴 정체 모를 열매가 맺히기도 했는데, 이 시기엔 새들이 모여들었다. 새가 날아와 열매를 따먹을 때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휴가를 떠난 일주일 사이 폭염이 기승을 부린 건 아니다. 지난 2년의 생존력을 떠올릴 때, 이 친구가 죽어가는 게 목이 말라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너무 뜻밖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충격이 크다. 테라스 한쪽에 쌓인 화분들과의 지난 이별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실감이 밀려온다. 늘 씩씩하게 인사하며 웃던 회사 동료가 실은 마음의 병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미안함 비슷한 감정도 들었다.


나무도 어쩌면 따뜻한 관심을 원했을지 모른다. “그냥 냅둬도 잘 크는 아이”라는 화훼단지 사장님의 설명은 인간의 오만한 언어였을지 모른다. 바짝 마른 잎사귀를 떼어내며 나는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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