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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Feb 07. 2022

생존신고

1.

인사 발령으로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세 식구가 세종시로 내려온지도 석 달이 흘렀다. 내 집을 다른 이에게 세주고 나는 다른 이의 집에 세 들었다. 거주지가 바뀌다 보니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3년 평창동에서 삶이 나와 내 가족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줬는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2.

물론 몸은 진작에 적응했다. ‘신’도시 아니랄까 봐 이곳의 모든 게 편리하고 깔끔하다. 외출 전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미리 부를 수 있다니, 서울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한 사치다. 모든 도로가 곧게 뻗어 운전을 싫어하는 와이프도 부담 없이 운전대를 잡는다.


3.

문제는 아무래도 마음의 적응인데, 이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일부러 선을 긋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편에 ‘잠시 머무는 곳’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보니 이 도시를 대하는 내 태도가 아직은 피상적이다. 어차피 이별할 상대. 어쩔 땐 나도 모르게 깔보는 말을 던지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서울도 아닌데 뭘 바래.” 이런 말.


4.

아이는 유치원을 옮기는 사이 7세가 됐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새 환경에 가장 빨리, 잘 적응했다. 아이는 섬약할 뿐 나약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새 유치원에는 남자 친구가 많다. 그 영향인지 원래 7세 남아가 그런지 몰라도 아이는 요즘 부쩍 힘자랑을 한다. 아빠의 힘을 확인하려는 시도도 잦다.


5.

개인적으로는 세종살이 후 몸이 좀 불었다. 매일 수많은 정부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먹고 바로 앉아 기사 쓰고, 쓰다가 불려 나가 뭔가 또 먹는 일을 반복한다. 공복 상태로 덕수궁과 청와대 길을 걷고, 걸으며 사유하고, 사유하다 메모하던 나의 소중한 루틴들이 이곳에 온 뒤로 무너졌다. 영혼 없이 갈겨쓰고 다급히 전화받다가 폭식하고 더부룩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때가 많다.


6.

아까 낮에 정세랑 소설을 20페이지 읽었다. 올해 들어  독서라니, 부끄럽다. 독서 후에는 가볍게 푸시업과 플랭크를 했다. 모두 끊어진 루틴을 다시 이어보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됐다. 오랜만에  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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