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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May 16. 2023

생애 가장 빛나는 오늘이지

슬픔에 지쳐 벼랑 끝에선 우리가 우리에게

<poem_story>


오래만이라 반갑긴 하지만 그렇게 반갑지도 않았다.


친구는 연락도 받지 않았고, 만난 지 몇 년이 지난 것을 만회하려는 듯, 

텐션이 깃든 톤 높은 목소리에 부드러움까지 참기름처럼 묻어 있다.


"친구야 오랜만이야 내 딸 결혼해."

"와 줄 수 있지, 그동안 연락도 못했는데 부담 주는 거 아냐."

"네가 와줘서 축하해 주면 좋겠어, 친구들 중에 네가 가장 행복해 보이니, 네가 와주면 내 딸도 네 행복의 기운을 받아 잘 살 것 같아 부탁해..."

겸연쩍으면서도 거절할 수 없는 힘을 넣은 그의 말에, 


"무슨 부담이야, 축하해... 그 꼬맹이가 커서 결혼해"

"그래 꼭 가보께... 축하해, 내가 가서 축하해 주면 잘 살 거야 걱정 마. "


친구 딸의 결혼식은 성대했지.

코로나19 지난 뒤라 하객들도 제법 붐볐다.

친구에게 눈도장을 찍고 피로연 장소인 식당으로 향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처분의 순서를 기다리는 상품처럼,

하객들에 등 떠밀려 먹는 뷔페 음식이지만, 

다양하게 마음대로 먹으니,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고 단순히 행복했다.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광안대교를 걸쳐 바다 위로 오는 귀가 길은,

토목공학의 대단함과 아름다운 풍광에 감사했고,

소중한 일과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길이 행복한데,

얼마 전 술을 만취한 상태로 치가 떨리는 높이의 대교 위에서,

신고 있던 신발과 우리 나이처럼 오래된 자동차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사업 실패로 채무에 시달려 하늘나라로 먼저 간 회사 입사 동기 김 00가 생각났다.

  

송도에서 해운대까지 치가 떨리는 그런 높이의 다리 위를 지나오며,

벼랑 끝에 선 또 다른 삶도 있었으므로 겸손해지기도 한 하루였다.

 

  



<집으로 가는 길>


이 길이 내 길인가

조명 없어 캄캄한 터널이

내 길인줄 알았지.


가다 보니 터널은 짧았고

햇살 비추는 길이

더 깊고 넓었어.


멈춰 서려했었던 깜깜한 순간이 선뜻 무서워져.


삶은 롤러코스트지

짧고 어둡다고 낙담했다가

더 길고 따사로운 내일을 보지 못할 수 있는 거지.


그늘과 어둠에 잠시 가려져 앞이 안보였을 뿐인데

누구는 그 높은 대교 위에서

누구는 코발트빛 밑그림이 보이는 해안 절벽 위에서

몹시 부는 바람을 맞으며 술도 취하지 못한 채 벌벌 떨며 서있었겠지.


조수석에 동승한 시간과 함께 광안대교를 지나고

조명은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니

내 삶도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 같은

생애 가장 빛나는 오늘을

우리는 달리고 있는 거야

기억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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