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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든 1

학교의 명예를 걸고

by Guwani Jan 19. 2025

꽤 큰 학교였다.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하기도 했었고, 나무 칸막이로 나뉜 강당이 우리 교실일 때도 있었다. 한 학년이 최소 10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이사해서 이듬해 그 학교에 입학했을 때, 3년 터울의 작은 형도, 그 위에 두 살이 더 많은 작은 누나도 동시에 같은 학교에 다녔다.

노란색 봉투에 육성회비를 내던 시절인데, 가정 형편에 따라 가난하면 100원, 보통이면 200원, 좀 산다 싶으면 300원을 냈다. 학기 초에 그 금액이 정해졌는데, 내가 얼마씩 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은 누나는 100원을 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빠도 공무원이고, 옷도 반듯하게 입고 있는 새로 전학을 온 예쁜 누나가 가난해 보이지는 않았겠지. 담임 선생님께서 300원으로 정해준 봉투를 받아 든 누나는 ‘우리 집 가난해요’하며 울고 불고 선생님께 사정을 해서 100원으로 고쳐진 봉투를 들고 온 효녀였다.

보통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누구의 동생으로 불리었을 텐데, 중간에 전학 온 형과 누나가 선생님들께 큰 인상을 주지 못했는지, 나는 그냥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똘똘한 아이였다.

5학년이 되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적이 있는데, 그해가 다 가기 전에 다시 원래 마을로 이사를 했다. 1년도 안되어 모교로 전학을 온 내 성적을 두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 어머니를 불러 상담 요청을 해야 했다. 전학을 갔던 학교에서 받은 성적을 그대로 반영하면 최고 성적상을 줘야 하는데, 이제까지 그런 예가 없으니 우등상 정도로 타협하자, 뭐 그런 상담이었다.

초등학교 성적으로 잘난 체하는 바보 같다. 초등학교의 맏형 6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의 명예를 크게 높였던 위대한 역사를 말하기 위함이니 널리 이해해 주시라.


그 도시의 모든 초등학교의 학력 수준이 어떠한지 평가하는 시험이었던 것 같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라 불리는 어른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이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6학년의 한 반을 장학사가 임의로 지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정된 반에 학교 선생님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교육청에서 나온 분들이 가져온 시험지를 그들의 감독하에 풀어야 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학교 6학년은 총 10개의 반이 있었다.  1반부터 내가 속해 있는 5반까지는 남학생 반, 바로 옆 반인 6반부터 10반까지는 여학생 반이었다. 요즘엔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월등한 수학 능력을 보이고 있지만, 40여 년 전은 좀 달랐다. 아무래도 남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을 때였다. 시험이 예상된 날을 하루 앞두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복잡한 작전을 반복해서 훈련시키셨다. 우리는 학교의 명예를 걸고, 이 훈련을 최선을 다해서 우리 몸에 숙지시켜야 했다. 

훈련의 첫 단계. 먼저 자리 배치를 다시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한 곳에 모이지 않도록 군데군데 자리를 잡아 앉았다. 나는 중앙의 어디쯤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번째 훈련은 몸의 자세 바르게 하기. 책상에 몸을 붙이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연필을 든 손만 책상에 올린 채 문제를 풀고 답을 쓰는 훈련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자세여서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학교의 명예를 걸로 참아내야 했다.

세 번째 훈련은 좀 특별했다. 우리만의 암호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선생님! 몇 번 문제의 몇 번 보기가 잘 안 보입니다.” 그때는 시험지의 인쇄 품질이 좋지 않을 때라 글씨가 잘 안 보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학생은 정해져 있었다. 정말로 잘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암호였던 것이다.

네 번째는 좀 더 어려웠다. 주변의 친구와 답지를 교환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익혀야 했다. 선생님들이 감독을 하는 중에 답지를 친구와 바꾼다고? 들키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연습을 해야 했다. 먼저 눈 빛 교환을 한 뒤에, 선생님께 시선을 둔 채 손으로만 후다닥 답지를 바꿔야 했다. 그렇게 받은 친구의 답지의 빈칸을 채워줘야 하는 임무가 먼저 자리 배치를 받은 소수의 인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반복된 연습을 통해 우리는 선생님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런데 어떤 훈련이든 낙오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양심이 살아있는 낙오자가 바로 나였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하지만 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훌륭한 전사가 되어 있었고, 좀 모자라다고 평가받던 친구 한 둘이 낙오자로 불려 나갔다. 어찌 된 것인지, 그 친구는 시험이 있던 날 결석을 하였다.


시험날이다. 창 밖으로 양복을 입은 어른들이 학교 건물에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우리 반이 걸리게(?) 해주세요. 우리 정말 자신 있어요. 우리가 다른 학교 다 이길 수 있어요. 우리 반이 제일 공부도 잘하고, 훈련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만세! 정말 우리 반이라니! 신은 최선을 다한 자들을 돕는다더니. 우리는 훈련한 대로 척척 시험을 치렀고, 창 밖을 보는 시간이 많았던 감독 선생님의 눈을 쉽게 피해서 작전을 거의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한 하나의 실수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항상 1등만 하던 친구가 먼저 암호문을 던진다. “선생님, 5번 문제의 4번 보기가 잘 안 보이는데요.” 아뿔싸. 하필 이럴 때 저 친구가 실수를 한단 말인가. 큰 사고를 빨리 수습해야 했기에 나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저는 5번 문제의 3번 보기가 안보입니다.” 이런 상황은 훈련되지 않았었기에, 다른 친구들은 요샛말로 멘붕이 왔다. 응시자 전원이 100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난 몇 주 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1등을 놓치고 2등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년 하위권이던 가난한 동네의 학교가 2등을 했으니 정말 잘했다고 선생님들은 진짜로 기뻐하며 우리를 칭찬했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아쉬움과 억울함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였기에 더 처절하게 억울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그때 그 어려운 훈련을 6학년의 모든 반이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반, 그러니까 6학년 5반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우리 반이 선택될 줄 알았을까? 생각해 보니 담임 선생님은 훈련에 앞서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반이 제일 공부 잘하는 반인 거 너희들도 잘 알지? 어떻게 해서든 장학사님이 우리 반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할 테니깐, 너희도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1등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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