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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r 14. 2022

6. 가부장제 속 아버지

아버지, 그 때 우리 많이 아팠어요. 

 나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깊은 편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셨던 것도 아니시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아버지가 꽤 많이 불편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것을 아는 것과 내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불편해 한다는 감정은 별개였다. 지금에야 내가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왜 내가 아버지가 무서운지 불편한지 그 이유를 나 자신에게 찾곤 했다. 내 어떤 모습을 고쳐야 나는 아버지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을까, 서스럼 없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그런 고민을 포기하게 된 일이 있었다. 




 나는 친가보다는 외가가 더 편하고 좋았다. 아주 어렸을 때 정읍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갔을 때였다. 큰아버지 댁 뒤쪽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고모들이 어리디어린 내가 뭘 알겠나 싶으셨는지 그만, 내 앞에서 우리 아버지의 흉을 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작은 뒷담화였을 텐데 나는 그게 그렇게 속이 상했다. 큰집에서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린 나조차도 눈치를 챌 정도로 좋지 않았고 큰집에 있는 내내 외톨이처럼 바깥으로 밀려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눈에 띄어 마음이 서늘해지고 있던 터였다. 고모들의 작은 뒷담화는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혼자 우두커니 뒷방에 있다가 엄마를 만났고 그만 엄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 말은 불씨가 되어 큰집 식구들과 우리 엄마가 언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길로 인천에 돌아오게 되었고 친가와는 거의 연을 끊다시피 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와 친가 식구를 갈라놓은 원흉이 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외가는, 늘 편안했다. 외할머니가 아주 살가우신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 이모들과 외삼촌들도 마찬가지셨다. 친가와 사이가 멀어진 이후 나에게 친척들은 외가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작은이모에게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외할머니가 지금 게단에서 넘어져 큰 수술을 받게 될 정도로 위독하시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몸도 마음도 약하셨던 어머니였기에 나름 머리를 쓴다고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나는 아버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기대했다. 엄마를 대신해서 외할머니에게 달려가 주실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아버지라도 전주에 내려가셔서 외할머니 상황을 좀 봐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외가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니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엄마는 출가외인이다. 그리고 너는 그집 장남이 아니라 우리 집안 장남이고. 내버려 둬라. 거기서 알아서 할 거다." 

 "아빠, 돈이 없으면 제가 모은 거라도 보탤게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엄마의 엄마인데....."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구두만 손 보고 계셨다. 그게 다였다. 결국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아버지가 움직이시지 않으니 엄마도 무언가를 하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외할머니의 상황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외가를 찾아가는 일은 없어져 버렸다. 면목이 없어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척이라 부를 만한 존재들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아버지는 외가에 대해서는 참 냉정하셨다. 매해 고추장을 보내주셨던 것도 외가였고 내 대학 등록금이 없을 때 도와주셨던 곳도 외가였다. 나와 동생의 용돈을 챙겨주셨던 분들도 외할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이모들이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인천에 오시는 외할머니나 이모들에게 차가우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는 외가를 혈연으로 묶인 사람들로 인식하고 계시지 않으셨다. 아버지에게 외가는 그저 타인이었다. 외할머니의 사고 소식 바로 전, 촌수도 먼 친가 친척 조카의 결혼식은 반드시 참여하셔야 도리지만 외할머니의 사고 소식은 그저 나와 관계 없는 타인의 이야기셨던 것이다. 


 이 일은 두고두고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껴안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이 사건이었다. 아버지 세대는 이게 당연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의 가족에게 무관심하셨던 더 나아가  철저하게 타인으로 취급하셨던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가 더욱 멀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가족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게 가장이라면 그건 무능력한 거라고, 나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가장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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