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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pr 08. 2022

15. 한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들은 게 작년 가을.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말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세 번째 입원을 하셨다. 가벼운 축에 속하는 뇌경색이라고는 했지만 거기에 당뇨 합병증까지 겹쳐 아버지의 입원은 상당히 길어졌다. 온 몸에 열꽃이 피어 사경을 헤매시기를 몇 날 며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열꽃이 피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암 검사를 비롯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검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열병은 쉬이 낫지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원인을 '다시' 찾겠다는', 듣고 나서 헛웃음만 나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몇 주 전이었다. 아버지의 하나를 해결하려고 약을 쓰면 다른 쪽에서 부작용이 생기고 그 부작용을 잡으려면 다른 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육체는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는 듯했다. 뇌경색에 당뇨합병증이 겹쳐 아버지는 일단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으셨다. 신장과 혈관 문제로 아버지의 가려움증은 다시 시작되었고 왼쪽 팔은 그나마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지만 왼쪽 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품위란 어찌나 연약한지, 인간이 기를 쓰고 지켜야 간신히 지켜지는 것인 듯싶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한 인간의 품위는 효율성의 잣대로 그 가치가 매겨지는 듯하다. 그나마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발라가면 그나마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돈도 없는데 나이를 먹은 상태에서 아프기까지 하면 한 인간의 품위는 쉽게 깨진다. 아버지가 당뇨로 인해 발가락을 하나 잃으셨을 때에도, 가려움증에 밤새 온 몸을 긁어대도 그래도 아버지는 스스로 품위를 지킬 선은 있으셨다. 아버지는 스스로 걸으실 수 있으셨고 그래서 이제는 이름도 잃어버린, 양화점이라는 이름이 어색한, 구두 수선방에 가까운 그 가게를 지키실 수 있으셨다. 힘에 부쳐도 아버지의 의지대로 움직이셨고, 먹었고, 무언가를 고치셨다.

 그러던 아버지는 뇌경색 이후에 혼자 걷지도 못하셨고 화장실 한 번을 가기 위해서도 아버지는 누군가의 손에 의지하셔야 했으며 그게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자신을 어린 아기로 여기셔야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너지는 육체는 인간의 품위도 함께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무너지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도 의심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의심은 마음에 자그마한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우울이라는 마음의 감기까지 걸리셨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으로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ㅁㅁ아, 어디냐. 아직 출발 안 했냐?"

 "아빠, 저 세 시 반까지 갈 거에요. 여기서 거기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잖아요. 이제 출발할 거에요. 쫌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빨리 와라."


 아버지가 나나 동생을 만날 수 있는 건 근처 대학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나갈 때뿐이며 이 때가 유일한 바깥 세상으로의 외출이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아버지가 계신 병원까지 약 두 시간, 아버지는 도착 두 시간 전부터 전화를 하셔서 언제 오는지를 확인하시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셨다. 비록 휠체어를 타야 하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바깥 세상의 공기, 당신을 꼬옥 닮은 아들들을 만나는 가장 기쁜 시간이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마음과 달리 피곤에 절어있는 상태에서 때로는 슬픔과 짜증에 젖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곤 했다. 가서 닿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마음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현실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걸 온 마음으로 느끼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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