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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pr 06. 2022

14. 아버지의 사과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두 차례 수술과 입원 후 아버지는 몰라 보게 쇠락해 가셨다.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콩팥은 예전 만큼 기능하지 못했고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가려움증. 아버지는 가려움증을 이기지 못해 긁으셨고 긁은 곳에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는 쉽게 낫지 않으셨다. 그 상처가 깊어지고 고름이 깊이 박히면 염증이 발생하고 그 염증은 심한 열병으로 이어졌다. 이 악순환에 아버지는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셨다. 온 몸에 약을 발라대셨고 가려움과 격렬하게 싸우셨지만 꽤 많은 싸움에서 아버지는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상처가 생기고 잘 아물지 않은 상처 중에 하나는 곪아가고 시작했으며 열병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병원에 다니시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계셨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땡깡과 짜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곤 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식당에 앉아서 종업원을 부를 때, 혹은 물을 떠올 때라든지 그게 아니면 집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이상한 데서 아버지는 나에게 짜증을 내시곤 하셨다.


 "왜 밥을 안 먹는 거냐. 왜 하필 그런 메뉴를 시키는 거냐, 그냥 나랑 똑같은 걸 먹으면 되지. 종업원을 왜 귀찮게 하는 거냐, 좀 조용히 일어나지 왜 이렇게 시끄럽게 일어나는 것이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건강하게 내 의견을 말하기로 결정했기에 '아빠 저 지금 배가 안 고파서요, 나중에 먹을게요. 아빠 저는 오늘 김치찌개 말고 다른 게 먹고 싶어요. 아빠, 우리가 돈을 내고 먹는 건데 일하시는 분들께 요청하는 건 괜찮지 않아요?' 등등 아버지 입장에서는 소위 딴지를 거는 아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렇게 역정을 내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에서 지켜보던 분들이나 혹은 엄마가 보다 못해 내 편을 들어주시면 그제서야 소리를 낮추시고는 빠르게 나가버리셨다. 내 편을 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기분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씁쓸했다. 그리고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에게 큰소리 치는 아버지가 창피했고 그런 아버지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책잡히지 않고 싶어 교양 있는 척, 착한 아들인 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향한 아버지의 짜증과 땡깡, 도를 넘는 화가 가끔은 내 사랑없음에 대한 속죄의 과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속이 시끄러웠던 어느 날. 나는 속이 시끄러우면 무조건 나가서 걷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 여지가 생긴다. 그날도 나는 시끄러운 속을 달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걷기 시작했다. 햇살도 적당했고 바람도 선선하니 걷기 좋았지만 내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가뜩이나 속이 시끄러운데 아버지는 또 어떤 일로 시비를 거시려고 전화를 한 걸까, 싶은 마음에 속은 더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빠, 저에요. 어쩐 일이세요. 별일은 없으시구요?"

 "그래 나는 괜찮다. 그런 ㅁㅁ야. 어...."

 "네, 아빠 말씀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말이다."


 아버지는 한참을 뜸을 들이셨다.


 "에이, 무슨 일이신데요. 괜찮아요. 말씀해 주세요."

 "다른 게 아니고, 우리 ㅁㅁ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미안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네?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아니, 내가 너한테 유독, 못되게 굴어서, 큰소리로 뭐라고 그러고, 너 힘든데 자꾸 잔소리나 해대고... 그게 참 미안하더라. 아빠가... ㅁㅁ이 너한테 정말 미안하다."


 그 때 나이 마흔셋. 내 나이 통틀어,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날이었다.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길 한복판에서 나는, 꽤 많이, 울었다.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죠. 아빠한테 뭐 제가 제대로 한 게 있나요. 돈도 많이 못 벌고, 가까운 데서 모시지도 못하고. 아빠는 정말 저한테 충분히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더 죄송하고 감사해요."

 "그래, ㅁㅁ이. 아빠가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살아온 평생, 기억하는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과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이었으니 망정이니 마흔 넘은 남자가 길거리에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누가 봤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알았을 거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없다고는   없으나 그래도 나는  상처들이  아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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