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박따박 들어오는 엄마 월급 삼십만 원.
이사하기 전. 엄마는 이사에 동의하면서 평생을 악착같이 모은 돈을 집을 사는 데 보태고는 대신 전에 살던 집을 파는 대신 엄마의 명의로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송씨 집안에서 자기 명의로 된 전화기 하나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자기 명의로 집 하나를 장만하셨다. 언제고 아버지와 살기 힘들면 당장에 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가려는 심산도 있으셨고 일단 그 집을 월세로 내놓으면 단돈 몇 십만 원이라도 매월 수중에 따박따박 들어오리라는 계획도 일찌감치 세워두셨다. 아버지에게는 전에 없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감히, 여자가, 자기 명의의 집을 갖다니...!! 게다가 지금 사는 집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동생 명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상실감은 더욱 크셨다. 그리고 그와 상관 없이 엄마만의 경제 활동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집을 깨끗하게 수리하고 리모델링을 감행하셨다. 벽지부터 세면대, 바닥 장판까지 엄마가 진두지휘하셨다. 그리고 첫 세입자를 들이고 엄마의 통장에 첫 월급 삼십만 원이 들어왔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 엄마는 우리에게 한 턱 쏘셨고 우리에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들을 하나 하나 해주셨다. 당뇨 예방에 좋다는 양파즙이며 여름이면 선크림, 내가 좋아하는 갈비며 탕수육 등 작은 월급으로 엄마는 '소비'하는 즐거움을 누리셨다. 비록 첫 세입자가 참 우리를 힘들게 했어도 그 힘듦보다는 엄마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 삼십만 원의 즐거움이 더 크신 듯했다.
"고작 삼십만 원이다야. 게다가 집 수리할 때 든 돈이 얼만데. 생각보다 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 별로 없어."
말씀은 이렇게 하시지만 엄마의 표정도 환해지고 어깨에 적절하게 힘도 들어가신 것이 보였다. 물론, 엄마의 홈쇼핑 중독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 구석 하나한 쌓여가는 살림살이를 보며 동생이 한숨이 커졌으나 나는 반쯤 눈을 감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수십 년, 엄마가 어디 당신 사고 싶은 것을 맘껏 사본 적이 있으셨던가. 엄마의 작은 경제 활동이 나는 그저 보기 좋았다.
내가 중학교 때였던가. 다른 아이들처럼 입히지 못하셨던 것이 못내 아쉬우셨던지 학교 끝나고 들어온 나에게 뜬금 없이 옷을 사러 가자고 하셨다. 큰 맘 먹고 엄마는 종합 쇼핑몰로 버스를 타고 갔고 거기서 청바지 한 벌과 윗옷 두어 벌을 샀다. 그런데 엄마의 결심이 무색하게 옷값은 엄마가 생각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종합 쇼핑몰 옷이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호기로운 엄마의 결심이 무색하게 공기는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당신 옷 한 번 제대로 사입지 못하셨던 것은 물론, 사더라도 내가 산 옷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옷들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사셨던 터라 아마도 어머니는 참 복합적인 감정이 드셨던 듯하다. 거기에 나온 김에 저녁도 사주시겠다고 해서 간 곳이 햄버거 가게. 엄마는 차마 드시지 못하고 나에게 햄버거 세트 하나를 사주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는 많이 우셨다. 한없이 우셨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생각보다 비쌌던 옷값에 엄마는 만감이 교차하셨던 듯하다. 아끼고 아껴서 돈을 모았으나 옷 한두 벌에 거덜나는 상황, 당신 기준에서는 꽤나 비싼 옷과 음식을 고르는 아들에 대한 얄미움, 아무리 자신이 짠지가 되도록 아끼고 아껴도 근천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 등이 엄마를 참 비참하게 했다고 나중에 엄마는 말씀하셨다.
언제고 부자가 되면-결코 오지 않을 미래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 때는 어떠한 부채감 없이 자식들에게 돈을 쓰리라, 먹고 싶은 음식도 맘껏 먹게 하리라, 필요할 때 당당하게 용돈으로 쓰라고 돈을 내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그 말이 더 가슴 아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우리 엄마와 엄마의 세대, 특히 삶이 퍽퍽했던 분들은 당신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법을 모르신다. 엄마가 내게 해줬던 말 중에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게 더 아팠다. 삶을 즐겁게 영위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소원,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소망, 도대체 수십 년을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왜 그녀들의 삶에 '자기 자신'은 없는 것인지 뒤통수가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