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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r 29. 2022

11. 터널 끝에 닿을 수 있을까,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울었다.

 아버지의 입원은 엄마에게는 여러 모로 속상한 일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써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부부 사이의 '애증'이었다. 입원한 아버지를 어머니는 참 많이 안타까워 하셨으나 한편으론 아들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셨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엄마는 그 안타까움과 치밀어 오르는 불편함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계셨고 동생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그 아빠 때문에 니가 고생해서 어쩐다냐. 왜 하필 그렇게 아파서는... 쯧쯧쯧."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가족끼리. 아빠가 아프고 싶어서 아팠겠어? 엄마는 이상하게 아빠를 이해 못하더라. 나는 아빠가 불쌍해 죽겠는데 엄마는 안 그래? 도대체 왜 그래?"


 엄마는 동생의 그 말 한 마디에 무너진 것이었다.

 동등한 상황에서 오롯하게 자기를 편 들어 줄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둘러싼 맥락을 판단할 때 자신의 감정을 맹신하게 된다. 그 감정은 어느새 사실이 되어버리고 그 사실은 확고한 진실이 되어버린다. 동생은 그저 아버지를 걱정해서 던진 말이었겠지만 하필 거기에 짜증이 섞여 있었고 또 하필이면 엄마 역시도 마음 한 켠이 아리고 서운했던 터였다. 그 짧은 순간, 3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수십 년 반복되었던 엄마의 아픔과 상처는 재빠르게 연산을 시작했고 그 연산의 결과는 '이 집에서 자기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을 송씨 집안을 위해 최선을 다했건만 엄마의 '엄마'가 아플 때에는 철저히 남으로 살라고 했던 아버지, 두 아들이 장성하자마자 가서 폐지라도 주워서 팔라는 아버지의 무례한 언행, 그 어떤 물건도 어머니의 명의로 된 것이 없어 얹혀사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송씨 집안의 집구석까지 어머니의 연산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답을 내놓았다. 매순간, 모든 문제 앞에서 이 답으로 귀결되는 심각한 모순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엄마의 모든 감정들이 울컥울컥 쏟아지고 마침내 어느 정도 감정의 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00이가 잘못했네. 그 싸가지 없는 게 어디서 그런 돼도 않는 말을 했대. 엄마가 화가 날 만했네. 화 더 내도 되겠네, 아주!"

 "니가 뭘 알아. 너도 똑같지, 뭐. 니가 어렸을 때 어땠는지 알아? 너도 날 무시했어. 그래도 난 너네한테 할 만큼 다했다. 돈 안 벌어다 준 니 아부지가 문제지 나는 정말 죽을 둥 살 둥으로 진짜 애써서 너네 키웠어. 어?"

 "엄마 알지. 그럼. 내가 다 알지. 엄마 근데 왜 엄마가 아프면 우리가 아빠처럼 엄마한테 안 대해줄 것 같아요?"

 "......."

 "엄마, 근데 그건 아니다, 에이. 그건 00이도 똑같을 걸? 00이 걔가 아빠 닮아서 그렇지 얼마나 엄마를 아끼는데. 그리고 00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혹시라도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도 똑같이 지금처럼 아니지, 지금보다 더 수선 피면서 엄마 챙겼을 거야. 엄마가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하는데 엄마 그 생각은 잘못 됐네. 그리고 다른 사람 몰라도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알지. 엄마 말 안 듣고 집 팔고 이사온 것부터 아빠가 외할머니한테 어떻게 했는지, 나 군대 갔을 때 아빠가 엄마한테 뭐라고 했는지 내가 다 알지. 아빠가 아빠 노릇 못해서 그래. 엄마 잘못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엄마, 일단 화 풀고 진정해 봐."

 "너는.... 너는 내 맘 알지? 그렇지?"


 엄마는 울먹이기 시작하셨다. 흐극흐극, 엄마의 울음소리에 엄마의 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울음이 엄마의 말들을 대신했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다는 아니어도 엄마 속에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울음으로 쏟아지는 중이었다.


 "그럼, 그럼. 엄마 이러는 거 나는 충분히 이해해. 00이도 모르는 거 아니야. 다만, 지금은 아빠가 병원에 있으니까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뿐이지, 지금 상황에서 아빠랑 엄마가 바뀌었어도 00이는 아빠한테 똑같이 이야기했을 거야. 00이는 그런 면에서는 아빠보다 훨씬 책임감도 있고 그렇잖아."

 "그르치. 걔가 좀 무뚝뚝하고 그래서 그렇지 사랑이 많은 아이여. 그리고 니 아빠도 가족 복 없어서 이렇게 사는 거지, 참 불쌍한 사람이야."


 묵혀왔던 감정들을 다 쏟아내자 엄마는 좀 살 것처럼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부 관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끔은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측은지심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도 우리 엄마 세대의 삶을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 세대에 종속되어 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세대들,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은 감히 꿈을 꾸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자기 명의로 무엇 하나도 갖기 어려웠던 엄마의 삶은 너무나 오래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아무리 길게 도망가려 해도 고무줄처럼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듯 보였다.


 엄마의 인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끝도 없는 긴 터널을 지나갈 듯 보인다. 저 앞에 입구 말고는 달려갈 곳이 없는 인생. 결코 유턴할 수 없는 인생. 가부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 엄마의 시대는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것이다. 멀고 멀어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터널 끝 출구에 닿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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