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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pr 01. 2022

12. 엄마의 것은 없었다.

엄마의 중독에는 이유가 있다.

 드디어, 이 좁은 집과의 작별. 중학교 때부터 살았던 이 집은 네 식구가 살기에는 아주 좁은 집이었다. 대로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주 오래된 다세대주택. 동생이 주도해서 나와 엄마가 돈을 보태 멀지 않은 곳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화장실이 두 개, 안방과 함께 작은 방이 두 개나 딸려 있었다. 그리고 주방도 이전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그런 집.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사였다. 엄마의 살림은 생각보다 많았고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두 아들과 엄마의 의견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어도 쌓아놓고 사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결정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삿짐 센터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살림들이 쏟아져 나왔고 예상했던 것보다 꽤 큰 트럭을 준비했음에도 살림살이가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정점을 냉장고였다. 냉동고 안에 빈 틈 없이 들어채 있는 '그것'들을 엄마는 도무지 버릴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기어이 볼멘소리가 나왔다.


 "엄마, 쓸데없는 건 좀 버려요. 차라리 다시 사면 되지. 뭐, 이런 걸 다 가지고 가요."

 "니가 살림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다 필요한 것들이야. 가져가야 돼."

 

 나와 엄마 사이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마는 이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셨다.


 "됐다. 이사, 너네끼리 가라. 나는 따로 살란다. 이 살림들이 어디, 다 내 것이겠어? 다 너네 먹이는데 필요한 살림들이지. 이 중에 어디 내꺼가 있냐. 나쁜 자식들. 됐으니까. 나 이사 안 갈란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골이 잔뜩 나 있는 상황에서 동생의 중재가 시작됐다.


 "형도 이제 그만해. 자꾸 그렇게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해. 그리고 엄마, 우리가 미안해요. 그리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해서 엄마 짐을 다 들여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요. 엄마, 이제 그만하고 어서 이사 마무리해요."


 프라이팬이 대여섯 개, 쓰지도 않는 음식 건조기와고기 굽는 자이0이 세 개, 한 번 본 적도 없는 그릇 세트와 수저 세트, 처음 보는 냄비 세트와 기타 과연 저걸 쓸 데가 있는 걸까 싶은 다양한 살림살이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이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사를 마치고, 내 기준에서는 나는 엄마의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위, 홈쇼핑 중독. 일단 사고 나서 쓸모를 정하는 사람들을 기사에서만 봤지 바로 내 옆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사를 오고 처음 몇 년은 그래도 집 안에 공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방에 '우리를 위해 엄마가 준비한 살림살이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데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와 아버지와 결혼하시고 사신 지 수십 년. 그동안 엄마는 엄마 명의로 무언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결혼하시기 전, 아버지는 엄마의 손에 매니큐어도 바르지 못하게 하셨고 긴 손톱도 짧게 자르라고 하셨다. 엄마의 손톱조차도 어쩌면, 엄마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엄마가 아버지에게 집전화만큼은 자기의 명의로 해달라고 그렇게 사정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걸 용인하지 않으셨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집부터 시작해서 모든 공과금과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아.버.지.의.이.름이 붙어 있었다. 물건뿐이랴. 크게 다치신 외할머니를 외면할 때에도 아버지는 나와 동생은 '송씨 집안의 자손'일 뿐, 외가와는 피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천명하면서 우리 형제조차도 엄마의 무언가가 되는 데 제한을 두셨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이 좁아터진 집구석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쓸고닦고 지켜오셨지만 이 집에 엄마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아버지와 두 아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것들만이 오롯이 엄마가 어찌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돈이 없어 원껏 써보지 못하셨지만 말이다. 감히 상상해 보건데 이런 결핍은 엄마의 마음에 잘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하나 내버린 듯하다. 자기 것 하나 소유할 수 없었던 엄마의 결핍은 가난'이라는 현실과 맞물려 더욱 깊은 구멍을 엄마의 마음에 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어느 정도 깨닫게 된 시점에서는, 엄마에게 도무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내 방 가득 채워지는 '우리를 위한 살림살이'들을 보며 이 살림살이들로 엄마의 마음에 생긴 구멍이 채워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걸로 엄마가 덜 헛헛하고 허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한 입맛만 다시며 기도를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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