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나는 왜 쓰고 있었는가.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내 글의 '첫독자'가 됨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엄마를 바라보는 나를 독자인 '내'가 꼭 봐야만 했다. 올해 1월,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시면서 나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뒀던 어머니를 특히, '아버지'를 다 꺼내 차곡차곡, 정리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한 사람에게 품는 감정이 하나일 수 없다. 사랑과 미움, 서운함과 안타까움, 서러움과 미안함 이 다양한 감정들을 나는 모두 꺼내 그것들과 마주하고 보듬고 때로는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 여정의 끝에 오롯이 '꽃을 보는 그 마음'이 있을 수 있도록 나는 '글'이라는 그릇에 하나 하나 담아내기 시작했다.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해의 과정은 완벽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맥락을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또 늘 원하는 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불완전하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헤매며 부딪칠수록 내가 몰랐던 마음의 땅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내 아버지이자 엄마의 남편이었던, 그러나 이 모든 타이틀 이전에 한 사람이었던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알아가려 했고 또 이해하려 했다는' 이 여정 자체가 어쩌면 내가 꼭 걸어야만 했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이 연민이었고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건 순전히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걸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생긴다. 그 미련이 때로는 죄책감으로 내게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시기 전에 알아서 그래도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예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끔은 몸소리를 치기도 한다.
인간이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여행은, 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여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첫 대상은 나에게는 아버지와 엄마였다. 물론, 엄마를 이해하는 여정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하려고 한다. 그 다음은 내 동생이 될 수도 있고, 내 친구가 될 수도 있으며 혹은 내 제자가 될 수도 있겠지 싶다. 그런데 재밌는 건 조용히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첫 독자인 나'였다. 타인을 이해하는 여정에 늘 따라붙은 '나'를 발견하면서 인간은 정말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너를 본다는 것의 전제는 결국 '나'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해의 여정은 나와 너라는 별개의 존재가 '우리'로 묶이는 놀라운 경험인 셈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하다.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은 종속될 수밖에 없고 그건 늘 너와 나를 이해하는 여정을 훼방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는 엄마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고 그건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걸 새삼 깨닫게 되며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던지... 우리는 한 존재를 꽃으로 보기는커녕 존재 그 자체로도 보지 못하고 있을 수 있으며 그 원인이 사회 구조와 문화일 때가 꽤 많았다. 이 거대한 벽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글을 쓰면서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보같아 보이지만... 내가 바뀌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일단 나는 바뀌어야 하니까. 비록 어설프고 미흡하기 그지 없으나... 누구나 그 첫걸음은.. 어설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도 아버지됨과 남편됨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이 세상에서
살아서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방향이었던 한 남자.
부족했으나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왔으며
두 아들의 아버지로 긴 세월을 버텨준
내 아빠. 우리 아버지에게
이 여정을 바칩니다.
천국에서, 만나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