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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y 12. 2022

19. ...그대를 보겠습니다.

본다는 건

 장례식 첫날 밤이었다. 혹시나 싶어 나는 빈소에서 잠이 들었다. 문득, 잠에서 깨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아빠 거기서 뭐하세요, 이리 와서 주무세요.'


 잠결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지금 견뎌내고 있는 장례의 과정과 우리 아버지는 완벽하게 별개의 일인 것만 같았다.




 삼우제. 아버지를 모신 곳으로 어머니를 비롯해서 나와 동생이 함께 길을 나섰다. 아버지가 계시는 별빛당 앞으로 꽤 근사한 풍광이 펼쳐져 있었다. 안 그래도 함께 온 분들도 참 좋은 곳에 모셨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도 보시고는 참 좋다고, 꽃도 예쁘고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보기 참 좋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식 장례를 치른 까닭도 있고 추모 공원 안에서는 음식을 준비할 수도 없어서 그저 마음으로 아버지를 뵙고 나왔다. 장례도 치르고 바로 앞에 아버지의 유골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집에 가면 아버지가 계실 것만 같았다. 전화를 하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생도 엄마도 다들 동일한 마음이었다.


 동생은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가고 나는 어머님와 잠시 아버지가 계시는 추모 공원 근처를 잠시 걸었다.


 "와, 여기 근데 정말 예쁘네. 꽃도 많고 나무도 좋고 걷기도 좋고 공기도 좋고. 느그 아버지는 그래도 복 받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그들한테 선물 주고 가셨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꽃들도 이제 끝물이라 시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엄마 눈에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지 연신 저 꽃들이 너무 곱다며 야단이셨다. 이 꽃들도 시들겠구나. 그리고 그 꽃들과 엄마가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거기 잠깐 서봐. 사진 좀 찍자."

 "무슨 사진을 찍어. 못생긴 주제에. 싫어. 찍지 마."

 "엄마, 내가 어플 써서 찍을게. 그러면 진짜 이쁘게 나와. 걱정 마."


 마지 못해 엄마가 꽃밭 앞에 서셨다. 엄마도 나도 말은 안 하지만 그 사진의 쓸모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꽃밭 앞에서 찍고 의자에 앉아서도 찍고 나와 함께 셀카도 찍었다. 한 번이 어렵지 막상 하고 나면 별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와의 산책은 약 이십 년만이고 엄마 사진을 찍은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엄마 사진을 찍어드리는 것도 엄마와 사진을 함께 찍은 것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스무 장 남짓한 사진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웃고 있는 엄마와 내가 함께 찍은 셀카였다. 엄마가 사진기 앞에서 웃는 건 정말 내가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듯 보였다. 엄마는 갑자기 늙어버린 이후로는 절대 사진을 찍지 않으셨다. 너무 늙어버린 자신을 보는 게 많이 힘들었으리라. 또래의 여자들보다 훨씬 나이 먹어 보이고 아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그런 엄마가, 사진기 앞에서, 웃고 계셨다.


 5 8.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주일이 지난 어버이날.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엄마에게도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가 의식이 희미해지던 일주일 전 밤 열 시.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아버지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이던 그 말들을 나는 어머니에게 건넸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컸어요....

 



 '본다는 ' 워낙 정적인 느낌이 커서인지 '본다는 ' 동사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의지가 작동하여 몸으로 표현된다는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건 마치 문을 여는 일과 같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본다는 건 당신을 향해 내 관심을 두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사랑은 아닐지언정 미움은 될 수 없으며 거기부터 관계가 시작된다. 


 어쩌면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엄마와 아버지를 본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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