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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l 25. 2023

교토에서 저녁을

한국에서 밤참을 그리고 라디오

 여행이 아름다운 건 단순하고 평범하며 반복되는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간사이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도착하고 나서 느끼는 그 묘한 안정감이란. 세찬 비바람이 불고 있는 이 대한민국 땅에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건 여기가 내가 돌아와야 할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집은 건물을 넘어 '사람'이고 '함께 사는 온기 있는 존재'들이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다녀왔어요. 별일 없었어요?"

 "잘했네. 거기는 비 안 내렸어? 아픈 데는 없었고?"

 "그럼요. 한국이 비가 더 많이 오네. 엄마야말로 괜찮고?"

 "그럼 괜찮지. 이제 오는 거야? 조심해서 와. 혹시 몰라서 밥 차려놨어."

 "어우~ 엄마! 그냥 사 먹어도 되는데. 일단 얼른 갈게요. 고마워요. 엄마 생각나서 선물이랑 약도 많이 사놨어요. 가서 드릴게요."

 "뭘, 그런 걸 사와. 괜찮다니깐. 조심해서 와."


 소박한 대화가 오가면서 마음은 한결 더 편안해진다. 이 폭우를 뚫고 가는 게 걱정되지만 천천히 가면 되니까.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내 차에 타고나니 기분 좋은 피로감이 슬며시 차오른다. 라디오를 켜고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우리집'을 누른다. 벌써부터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의 진득한 냄새와 내가 좋아하는 생선 구이의 기름진 냄새가 나는 듯하다.


 밤참은, 교토 말고, 우리집에서.




 에피소드 하나.

 세찬 비가 가실 줄을 모른다. 차선은 거센 빗물에 보이지 않고 핸들도 제멋대로 흔들린다. 라디오도 끈 지 오래. 운전에 집중해야 할 때에는 음악이 방해가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폭우 때문에 가는 길이 더디다. 아찔한 순간들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니 일단 조금은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게소에 들른다. 커피 한 잔이라도 살까 싶었는데 이미 매장은 거의 문을 닫았다. 비가 좀 그칠 때까지 잠시만 쉬었다 가기로 하고 아까 끈 라디오를 다시 튼다. 차에서든 집에서든 늘 라디오를 켜두는 편인데다가 타국에서 며칠을 있다가 와서 그런지 빗소리와 함께 듣는 라디오가 살갑고 정겹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 오늘은 다 틀어주는 밤이 하는 날. 주제는 '내가 하는 일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신청곡과 함께 보내면 된다. 그리고 곧바로 생각나는 일이 있었으니.


 얼마 전 내가 아끼는 제자에게 기쁜 연락을 한 통 받았다. 드디어 결혼하게 되어 청첩장을 보냈다는 연락이었다. 진중하면서도 위트 있는 녀석으로 신앙심도 좋고 잘생긴 녀석이었다. 이 멋진 녀석이 왜 저리 연애를 안 하나 싶었는데 이 자매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다. 한참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고 녀석이 하면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언제....쯤? 선생님, 사십 대의 꽃은 연애라구요. 그러니 어서 저의 뒤를 따라, 연애를 좀 하시지요?!"


 한참을 둘이서 깔깔대고 웃었다. 만날 때마다 혹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이십 대의 꽃은 연애이니 제발 좀 연애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제는 역할이 바뀌고 말았다.

 어쨌든 그때 일이 생각나서 문자를 보냈다. '전 교삽니다. 기쁠 땐 역시 제자가 잘 커서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낼 때죠. ㅎㅎ 슬플 땐... ㅠㅡㅠ 제자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보낼 때요. 저 싱글이거든요. 듣고 싶은 노래, 장가갈 수 있을까. 커피소년도 결혼하셨는데...'


 그렇게 계속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장가갈 수 있을까'를 부른 가수 '커피소년'과 백년가약을 맺을 제이레빗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엥? 하필 커피소년과 결혼하신 분의 노래가 흘러나오다니. 오늘 밤 아주 쬐끔 서글퍼지는구먼.'


 이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가 다 끝나고 다음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이게 웬일! 가끔씩 보내던 문자라 소개될 거라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내 문자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필 커피소년과 결혼한 제이레빗의 노래 바로 뒤에! 혼자 큭큭거리며 웃을 수밖에. 일상이 그래도 살 만한 건, 역시 이런 위트 있는 사건들이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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