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업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소시민 Feb 18. 2024

당신을 존중하도록 노력할게요.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것...

 어제가 졸업식이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친한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왔지요. 밤 열한 시가 넘어 한 녀석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의젓하게 성장하던 녀석이라 참 예뻐했던 녀석이었습니다. 녀석의 메시지 중에 꽤 의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고3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작은 간식 메뉴 하나를 먹더라도 메뉴 하나하나를 저희에게 고를 수 있게 해 주신 모습입니다. 편하게 임의로 메뉴를 통일할 수도 있지만, 물어봐주고 기다려주시는 모습이 참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중3 후배들을 돕는 중에, 아이들에게 간식 메뉴 주문받는 일을 제가 자원해서 했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서 감사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ㅎㅎ ‘자신의 편안 버리고 우리에게 평안’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조심히 생각해 봅니다.

 아이쿠야,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는 제가 졸지에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이런 망극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면 상대방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만큼 큰 존중 혹은 사랑은 없을 듯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빚어나가기보다는 상대방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고 상대방이 빚어나가는 모습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랑하고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테니 말입니다. 


 이런 선택의 기회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졸업식 당일 오전에 우리 반 녀석들과 부모님들을 만날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환대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작년 일 년 동안 찍어뒀던 사진들 중에서 의미 있는 사진들을 한두 장씩 인화해 두었습니다. 그럴싸하게 나온 단체 사진은 학생 수만큼 인화했더니 쉰 장 정도가 되더군요. 그 사진들과 제가 아끼던 엽서들을 교실 곳곳에 깔아 두고 돌아다니시며 볼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모두 오시고 난 후에 부모님과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천천히 교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천천히 구경해 주세요. 모두가 한 번씩 보셨겠다 싶을 때 제가 신호를 드릴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다시 한 번 사진을 구경하시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들 혹은 엽서가 있으면 가지고 앉아주세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부모님들이 꽤 신이 나 보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면서 사진을 구경하시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한두 장씩 혹은 서너 장씩 가지고 다시 모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리에 앉으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 어떤 사진을 고르셨고 왜 그 사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요. 물론, 이야기의 서두에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어떤 이야기든, 어떤 감정이든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시고 혹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시면 과감하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분은 읊조리시듯, 어떤 분은 눈물을 머금으시고, 어떤 분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렇게 한 분 한 분 어떤 마음으로 졸업식에 오셨는지, 지금은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이 사진이 왜 마음에 와닿았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시 한 편을 읽고 또 노래 한 곡을 듣고 우리는, 사진 한 장을 찍고 졸업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저녁,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일 년 동안 감사했다는 말씀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눈에 띄는 내용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단체 사진도 좋았지만 무수히 많은 사진들 중에서 '제'가 직접 사진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정말 설렜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이야기할 때에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선택지가 마음을 정말 편안하게 했습니다. 그 선택지가 있으니 오히려 더 편하게 제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꽤 많은 부모님들께서 위와 비슷한 말씀을 많이 보내주셨지요. 이제 스무 살이 되는 자녀를 둔 어른들조차도 어떤 특정 영역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존중의 경험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른들도 이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우리는 라면 하나를 먹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내게 의미 있는 사진을 고를 수 있는 자유도 존재하고 또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말을 하지 않을 자유 또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상대방은 '안전'을 느끼고 나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올해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녀석들과 만납니다. 문득, 내 수업을 한 번 더 떠올립니다.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은 우리 교실에서 과연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될지... 자유를 경험하며 존중을 누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비로소 학생들은 주도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올해도 다시 한 번 박 터지게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대하는 수업, 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