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면 좋겠다.
동네 어귀, 차에 치인 고양이가 곁길에 있었다. 족히 일주일은 넘었을 시간.
맨 처음, 도로 한가운데 누워있던 녀석을 곁길로 옮긴 손길이 있었다.
그 녀석에게 내 손길을 보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만 하고 내 차는 옆을 조용히 스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내 손길 말고 다른 손길이 길에서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곁길로 옮겨두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최소한 두 번 세 번 몸뚱이가 짓이겨지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곁길에 누워있었다.
“동네 들어오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 죽어있던데. 그냥 둬도 되나?”
“시청에 전화하면 시체 수거하러 온다던데. 전화를 해볼까요?“
“불쌍해서 어떻게 해.”
친분이 있던 어른 몇과 말을 흘리며 안 된 마음을 나눈다. 그러나 쉽사리 고양이 시체에 손을 대는 건 부담스럽고 껄끄러웠다. 그저, 불쌍하구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했다. 고양이 시체는 그렇게 일주일 이상을 도로 곁길에 누워있었다.
그 고양이를 묻어준 건, 수능을 앞둔 동네 여학생 네 명이었다.
그 여학생 중 한 녀석인 D가 주말에 아빠와 함께 읍내로 나가다가 보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고양이가 그대로 있는 게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고. 녀석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친구들은 서로 그렇게 놔두면 안 되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걸어서 약 15분 거리. 네 녀석은 동네 어른들에게 삽과 장갑을 빌려 고양이가 누워있는 곳까지 걸어 나갔다. D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삽질은 내가 할게. 내가 우리 중에 힘이 제일 세니까. 너희들은 이 고양이를 위해 슬퍼해줘. 그리고 기도해 줘.”
“그래 알았어. 니가 땅을 다 파면 우리가 함께 이 녀석을 거기에 옮길게. 그다음에 우리 같이 봉분을 만들자.”
그렇게 삽질하는 여학생 하나에 그걸 비장하게 쳐다보고 있던 세 녀석에게 사자후가 울렸다.
“너네, 여기서 뭐 하냐, 공부 안 하고!!!!!”
동네 삼촌 중 하나였다. 땅을 파다 말고 삼촌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듣던 동네 삼촌은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잘했다, 잘했어. 그리고 고맙다. 가자 집까지 태워줄게. 그리고 가서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진짜 좋은 일을 해줬네.”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일주일 넘게 누워있던 고양이는 흙을 이불 삼아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 일이 회자되고 있다. 어른들도 미루고 미룬 일들을 우리 동네 여학생들이 했다고 말이다. 그 녀석들이 기특한 만큼, 우리 어른들은 부끄러워진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나는 그 부끄러움이 더욱 크다.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 ‘앎’이 곧 ‘삶’이 되는 일은 또 다른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당한 동물 한 마리에게 흙이불 덮어주는 게 몸에 배지 않은 걸 보니,
나는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