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무렵, 생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뒤에서 오던 자동차가 내가 운전하던 오토바이를 쳤다. 공중으로 붕 떠서 땅으로 낙하하는 그 짧은 순간, 거짓말처럼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스무 해의 반추는 단 1초면 충분했다. 주된 감정은 후회였다. 얼마 전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이때가 떠올랐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오롯이 나의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한다. 회한이 남지 않도록, 생각보다는 행동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다하면서 살아야겠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어부 요한네스의 단조로운 생애가 실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삶이다. 평범함은 만인의 공감으로, 그리고 노벨 문학상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한 패배는 없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20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소설이다. 노르웨이 어부 요한네스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1부 아침, 2부 저녁으로 나누어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할아버지의 이름 그대로 요한네스로 짓는다. 운명처럼 직업도 어부 그대로다. 이는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 요한네스는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면서도,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음에도,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말고, 커피를 끓이고, 빵을 굽고 난 후 산책을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듯 낯선, 낯선 듯 익숙한 하루를 보내며, 죽음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막내딸이 요한네스의 죽음을 정녕 슬퍼해 주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마무리다. 해가 저문다 해도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그리운 아내,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결국, 삶과 죽음은 <긴 하루>의 아침과 저녁처럼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이제 우리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머지않아 저녁이 올 테지만, 노여워하지도, 후회하지도 말고 담담히 오늘을 보내면 될 일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시기와 질투는 큰 의미 없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 경제력 면에서 큰 격차가 나도, 유식한 말로 주변 사람들과 나 사이 분산 값과 표준편차가 큰 것 같아도, 너무 괘념치 않아도 된다. 흰머리가 늘고, 몸이 무거워지는 건 모두 매한가지다.
누구든 깜냥껏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살면 된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결국 사람은 가고, 사물만 남을 뿐이다. 마지막 순간, 나의 죽음을 애도해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삶은 축복받은 것이리라.
2015년, 이승철은 <시간 참 빠르다>를 발표했다. 그의 데뷔 30주년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좋았던 그때가 아팠던 그때가 마치 어제 일인 것 같고, 떠나간 그대가 아직 내 옆에 있는 것 같아, 시간 참 빠르다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이 노래의 작곡은 젊고 세련된 감각의 신사동 호랭이가 맡았다.
그 무렵, 이승철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노인분장을 하고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던 내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복받쳤을 테지만, 후회의 눈물은 아니었으리라. 오히려, 같은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음에, 신이 주신 재능으로 삶의 부침을 다 이겨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의미가 크지 않았을까.
그동안 그는 아버지를 위한 노래 <빈터>, 그리고 어머님을 향한 사모곡 <마더>로 먼저 떠나간 부모님을 위한 흔적도 남겨 드렸다. 이제, 본인의 황혼 녘이 다가옴을 받아들인 후 <시간 참 빠르다>를 만든 셈이다. 데뷔 30주년이라는 특별함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앨범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잘 되든 그렇지 않던, 때 되면 또다시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40년 차 오늘을 살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름과 성별은 다르지만, 그의 재능은 막내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있으니, 이 또한 자연의 섭리다. 그도 요한네스처럼 행복한 인생 2부를 사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단조로운 일상, 밝고 긍정적인 생각이 여전한 건강의 비결이라니, 삶을 긍정하려는 그의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노래의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는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에일리의 <U&I>, 트러블-메이커의 <Trouble Maker>, 티아라의 <Roly-Poly>, EXID의 <위아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자타공인 최고의 작곡가 중 하나였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 안타깝다.
그는 예전 인터뷰에서 히트곡의 비결을 노력이라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사랑했기에, 스무 살 무렵 가수 오디션에서는 연거푸 물을 먹었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작곡가로 전향했고, 오랜 배고픔의 시간을 견뎌낸 후에, 그의 결과물들은 비로소 세상 빛을 보았다.
명성이 더해가도 특별함 없는 단조로운 일상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는 새벽 늦은 시각까지 일하더라도, 오전 8시에는 어김없이 눈을 떴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고유한 유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때 이른 저녁을 맞이했다. 저작권 수입이 상당했을 것임에도,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 단지, 그가 지인들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해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의 복잡했을 심경을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잊지 말자. 누구든 자신만의 때가 오지만,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아침이 오면, 편한 호흡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되, 저녁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도록 두자. 긴 하루를 사는 데 승리나 패배가 있을 리 만무하다. 행여 하루의 어느 때에 <시련이 와도> 묵묵히 받아들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