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22일 #3
약 12시간에 걸쳐 이스탄불까지 날아왔습니다. 어김없이 앞좌석 복은 없어서 남들은 어쩌다 한 번씩 하는 불쾌한 경험을 나는 이번에도 합니다. 내 좌석은 항공권 예약 시 좌석 선택 때 예약 홈페이지에서 봤던 1인 열은 아니고, 내 앞 좌석까지는 4 열이고 내 좌석부터는 3 열이라 있어야 할 옆 좌석 하나가 없는 탓에 훨씬 여유로웠습니다.
장거리 항공의 신기한 기내식 마법은 이번에도 여지없습니다. 맛은 있지만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서 이번에만 먹고 다음번 식사는 걸러야지 하는데도 매번 결심만 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전혀 먹을 마음이 없는 데도 다음번 식사 때가 되면 또다시 고파오는 배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여태까지 국적선을 이용할 때면 마일리지 혜택 등을 고려하여 대부분의 경우 K항공을 탔었는데, 이번 터키행은 일정과 비용을 따지다 보니 A항공이 최선의 대안이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좌석 간 공간이 K항공 보다 A항공이 좀 더 넓은 것 같다고 느끼면서, 이스탄불에 착륙하기 전까지 화장실은 두 번만 이용하고, 포스트, 다운사이징,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말란 브란도의 워터프런트 등 4편의 영화로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을 이겨냈습니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미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사활을 건다.
결국 4천 장에 달하는 정부 기밀문서를 손에 쥔 ‘벤’(톰 행크스)은
미 정부가 개입하여 베트남 전쟁을 조작한 사건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회사와 자신,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을 바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역시 이스탄불은 만만치 않은 도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항지를 가진 항공사를 보유하고, 또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24시간 수많은 환승객이 붐비는 공항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입국 수속을 하는 대기줄이 장난이 아닙니다. 언뜻 보면 길어 보이지 않는 줄인데 일단 그 줄에 합류하고 보니 최소 한 시간 이내에는 그 줄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 시간을 훨씬 넘겼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갔었을 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3시간 넘어 줄을 섰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그 보다는 덜할 듯 하기는 한데. 다행히 세관원들이 미국에서 처럼 입국자들을 범죄인 심문하듯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묻지는 않아서 불쾌한 기분은 좀 덜 하긴 했지만, 어쨌든 좋은 첫인상은 아닙니다.
작은 배낭을 메고 있으니 수하물 찾을 필요가 없어 편합니다. 예습했던 대로 지하철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우선 50유로만 환전을 했는데, 지금 환율이 1 유로 대 약 5 터키 리라 정도였습니다. 유로화도 가치가 떨어져 있지만 터키 리라는 훨씬 더 많이 떨어져 있어 환차익을 조금은 볼 것 같습니다. 어떤 글에서 1 유로 대 2.5 터키 리라일 때 터키 여행을 했다고, 요즘 터키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니다 보면 제일 힘든 시간이 제 경험에 비춰 볼 때는 현지 공항에 내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첫날 숙소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구글맵만 제대로 깔려 있으면 어디든 힘들지 않게 찾아갈 수 있지만, 옛날에 지도에만 의존해서 길을 찾아야 할 때는 그게 예사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005년에 큰아들 녀석과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내려서 호텔을 찾아갈 때입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나름대로 정보도 수집하고 동선도 머리 속에 그려보곤, 현지에 도착해서 그렇게 준비한 대로 하면 되겠지 했던 것이 막상 공항에 내리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거기다 소음까지 가세하여 순식간에 얼이 빠지는 겁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뭘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찾아가긴 했지만....
하지만 그 후로 몇 번 경험이 더 쌓일수록 그런 일들이 추억이 되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기술 발달의 도움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녀 보니 아직도 그런 힘든 경험을 해야 하는 곳이 여전히 많습니다. 2018년 이제는 버스나 택시보다는 지하철이 제게는 가장 쉬운 이동수단입니다. 왜냐하면 안내 표지판만 잘 보면 반대편으로 갈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습한 대로 순조롭게 공항 내의 메트로 역을 찾아서 지하철 티켓을 끊으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어느 틈에 역무원이 와서 내가 들고 있는 10리라짜리 지폐를 뺏어 들고는 친절하게도 티켓머신에서 표를 끊어줍니다. 거스름돈 2리라와 함께 받아 든 티켓은 원래 내가 구입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나는 충전해서 여러 번 계속 쓸 수 있는 티켓을 원했는데, 그가 끊어준 티켓은 2회 승차 가능한 티켓입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인터넷상에서 알고 갔던 제톤이라는 토큰처럼 생긴 승차권은 아마도 없어진 모양이고, 지하철과 트램 등의 1회 승차요금은 5리라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쥐고 있는 이 티켓은 2회용으로 개별로 각각 구입하면 10리라인데 난 8리라에 2회권 티켓을 구입한 셈입니다. 워낙 붐비는 곳이다 보니 이것저것 따져보고 있을 계제가 아니라 일단 오토가르라고 하는 이스탄불의 중앙버스터미널행 MI선에 올라탑니다.
구글 지도 맵을 이용 하니 실시간 위치가 파악되어서 정말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구글이 안되어서 바이두를 사용했는데 외국인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두 자체는 길을 찾고, 각종 교통수단들을 이용하기 위한 상당히 우수한 어플이었습니다.
여기 이스탄불의 오토가르는 큰 광장 가운데 지하에 메트로 역을 두고 거대한 스타디움처럼 긴 타원형으로 4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건물의 1층에는 여러 버스회사 사무실들이 있고, 그 뒤쪽으로 버스 주차장이 있어서 다양한 버스들이 시간에 맞춰 출 도착을 하고 있는 구조였습니다. 메트로 출입구를 중심으로 양쪽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구조로 이루어져 메트로 역 건물의 식당이나 상점을 이용하다가 모르고 반대쪽 문으로 나가면 똑같은 구조인데 좀 전에 봤던 그 사무실이 안 보여 당황할 수도 있는 그런 구조입니다.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 오토가르에 왔는데 11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어쩔까 하다가 주변의 식당에 들어갔는데 서빙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지나치게 친절하게 굽니다. 차이를 한잔 시키니까 조금은 실망하는 표정입니다. 배고프지는 않냐, 정말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등 자꾸 뭔가 음식을 시키길 원하는데, 비행기에서 주는 대로 사양 않고 많이 먹어서 그런지 정말 음식 생각이 없습니다. 나도 버스 탈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갈 길이 먼 터라 가급적 여기서 저녁도 해결하고 시간도 좀 보내고 싶은데 도리가 없습니다. 주문한 차를 가져다주고는 친근감의 표시로 말도 안 되는 영어 단어 몇 마디를 던져 놓고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내게 동의를 구하니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유명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시리아 출신이라는 한 젊은이는 자기 폰에 저장된 김정은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쁜 놈이라고, 자기네 나라 대통령 아사드와 같은 류의 놈이라고 분개하는데 그러면서 웃으며 또 내게 동의를 구합니다. '마이 프렌드!' 하면서 수시로 와서는 '김정' 노굿! 하며 웃으며 어깨를 치곤 합니다. 김정은의 '은'자는 발음이 안되는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알고 있는지 '김정'이라고만 합니다.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쓰달라고 하고서는 내 이름도 아랍어로 써줍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여기 와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착하고 선하게 생긴 청년인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농담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약속이 있는듯한 제스처를 하고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와 버스 대기실로 와서 아직 도착할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버스를 기다립니다.
첫째 날의 일정은 부산에서 5시 반에 집을 나서 김해공항에서 환승 내항기로 인천 공항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가, 오전 10시 20분 비행기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날아옵니다. 도착하면 시차 때문에 여기 시간으로 오후 4시 반 정도가 됩니다. 그런 다음 이스탄불 버스터미널에서 약 5시간을 대기했다가, 밤 11시에 버스를 타고 불가리아 국경을 넘어 내일 새벽 6시 반에 플로브디프에 도착하는 강행군입니다.
버스 운송이 발달한 나라답게 여기 대형 버스정류장인 오토가르에는 수많은 버스회사 사무실과 플랫폼들이 모여 있고, 터키에서 규모가 제법 크다는 메트로 버스의 대합실은 오토가르 내에서도 목적지별로 사무실들이 여러 군데로 나눠져 있다 보니 개별 대합실은 규모가 작아서 출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나 시간표가 없습니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도 중국사람들처럼 목소리가 엄청 커서 대화를 하는 게 마치 서로 싸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이크를 사용할 만큼 버스 대기실의 규모가 커지 않아 육성으로 버스의 출도착을 알리려다 보니 그런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끄럽고 답답해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대기실을 나와서 오토가르 주변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오래전에 터키에 가족들과 패키지여행을 와 봤지만 개별적으로 이스탄불 시내를 돌아다녀 본 적은 없습니다. 이번 일정의 마지막 이틀을 여기 이스탄불에서 보내려고 계획은 하고 있지만 막상 그때에 여기까지 시내 구경하러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주위를 둘러봅니다. 별로 특별하지 않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기에 다섯 시간은 너무 깁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특별한 건 없고, 아까 공항에서 여기 오토가르 올 때까지만 해도 잘 터지던 인터넷 접속도 안되고, 잠을 못 자서 피곤하기도 하고, 술 마실 마음은 아예 없을 뿐 아니라 버스 타고 가다가 용변이 급해질까 봐 겁도 나고.
또 시간 여유가 생기니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다시 돌아와 앉은 대기실에는 새 얼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누구는 졸기도 하고, 옆사람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전화 통화도 하는데, 간간이 내게 중요할 수도 있는 말들이 큰소리로 오고 갈 수 있는데도 난 아무것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싸울 듯 큰소리가 빈번히 나는데도 불구하고 현지어를 모르니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최소한의 국제 공용어로, 최소한의 서비스도 제공할 생각들은 아예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더 불안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갈 때쯤 불가리아행 버스가 도착하고 비로소 마음을 놓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버스를 타고 심야에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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