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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Mar 26. 2024

첫눈

작은 구멍.

그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새카만 세상.

그것을 보고 있으면 깊은 우물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깊은 우물 속을 헤엄치다 보면

그곳엔 우물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운 눈을 껌벅거리며 우물을 삼키게 된다.

 

태초의 단세포 맛이 느껴지는 강렬하고 깨끗한 맛이 난다.  


한 입 삼킨 순수는 가래가 가득 낀 목구멍으로 기름끼 가득 낀 뱃속으로 퍼져

지독한 순수를 전한다.

너무 진해서 온몸을 떨린다.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안될 만큼 내 몸과 마음을 흔들어대는 순수의 맛.

감당할 수 없는 이 순수의 맛 끝에

지저분한 입으로

사랑한다 한마디 뱉어 버린다.


그러면 깊은 우물은 미세하게 떨리면서

더러운 말을 천천히 삼킨다.

그렇게 순수의 우물은 사랑으로 이염되고 오염되어 중독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기다리곤 한다.


나의 깊은 우물을 떠나지 말아요.

더러운 입도, 튀기는 더러운 침도 괜찮으니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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