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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Feb 08. 2021

수상한 나라의 <승리호>

스타워즈 팔콘호를 추억함

재미있었다. 특수효과가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것도 좋았다. 신나게 보았다.

물론 <승리호>의 내러티브나 상상력은 '역시'라고 할 만큼 새롭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큼의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스타워즈>를, '팔콘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엘리시움>, <월E>등등)로 익숙해진 세계관에 <스타워즈>의 액션을 옷으로 입혀놓은 모습이랄까. 츄바카는 업둥이가 되었고, 한 솔로는 태호가, 레아 공주는 장 선장이 되었다. <스타워즈>가 우주를 무대로 한 SF 영화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 그 그늘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승리호>의 출격과 활약은 그대로 '팔콘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스타워즈>를 추억하게 한 것은 <스타워즈>를 동경하며 자란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었다고 해야겠다.(우리나라의 발전해가는 영화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어째서 SF 영화에까지 '신파'가 등장하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영화의 고질적 병폐라고 생각되는데, 공포영화마저도 '신파'로 회귀하는 무시무시한 우리나라 영화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공포는 공포로, 액션은 액션으로 담백하게 그려지는 것이 멋있다. 공포의 이유나, 액션이 생겨나게 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 공포는 공포스러우면 되고 액션은 신나게 날고 달리고 부수면 된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 그렇게까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대한 평가절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스타워즈>를 생각해 보면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조금씩 밝혀지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으로 눈물바람을 하지는 않는다. 눈물바람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보는 이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리호>도 그렇게 그들의 사연을 아꼈다면 훨씬 많은 상상력이 동원되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이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평탄한 인생과 세월을 사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누구에게나 삶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연으로 엮여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이의 삶이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단정 짓는 거만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해도, 응원한다. 사실 <승리호>를 보기 시작하면서, 민망스러운 영화가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영화가 얼마나 발전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동경했던 '팔콘호'를 추억하게 했으니, 늘 그리웠던 '한 솔로'와 '추바카'의 21년도 버전을 보여주었으니 됐다. 과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상상력이 소진된 오늘 이만큼의 즐거움을 나에게 준 것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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