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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n 20. 2020

팬텀싱어와 슈퍼밴드

여자가 기타를 치면 은혜가 안된다

최근 <팬텀싱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해 완전 문외한인데 그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 화음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으니 볼 때마다 귀가 호강한다. 그래서 시간까지 기억해 놓고(나는 프로그램 시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본다. 모두들 너무나 노래를 잘해서 한 사람씩 탈락할 때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이만큼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이 또 있는데 바로 <슈퍼밴드>다. 아마도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 프로그램 역시 구성원들의 실력이 너무나 훌륭하고 그들이 새롭게 편곡한 노래들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보는 날이 많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지금은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다) 학생회 활동은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거기에서 하는 활동들이 좋았던 것 같다. 두 살 터울의 오빠가 그 유명한 중2병에 걸렸을 때 아빠가 기타를 사줬다. 아빠는 트럼펫 악사였다. 아빠에게 오빠는 기타를 배웠고, 나도 어깨너머로 배웠다. 오빠는 일명, 기타 잘 치는 교회 오빠가 되었다. 나도 웬만한 곡들을 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생겼다(물론 이건 내 생각이니 찌질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교회에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섭외되었다. 성가대의 수준을 높이고 학생회에서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고 멋있게 공연하며 문화적으로 풍부해지면 많은 친구들이 함께 믿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멋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밴드를 만들기 위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들을 모아 역할을 맡겼다. 물론 나는 기타를 치고 싶었고, 세컨 기타 정도는 맡을 수 있는 실력이 된다고 생각했다(물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기타를 치겠다고 했다. 아니면 베이스라도 하고 싶었다. 기타를 치면 베이스는 금방 배울 수 있으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기타를 치면 은혜가 안된다!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밴드에 들어가긴 했으나 코드나 겨우 잡을 수 있는 키보드를 맡았다. 여자가 기타를 치면 은혜가 안되고 키보드를 치면 은혜가 되는 이상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밴드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 없는 키보드를 하자니 공연 때마다 쩔쩔맸고 재미도 없었다.

얼마간의 활동을 했고, 나는 음악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회실에서 기타를 치는 남자 선배나 동기들이 꽤 있었는데 나는 그들보다 실력이 나았지만 별로 기타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음악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취미 정도로는 기타를 치고 있지 않을까.


<팬텀싱어>도 <슈퍼밴드>도 여성은 아예 지원 자격이 없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항상 의문이 들었다. 왜 남성들만의 경연을 하는 것일까.


1.

팬덤 자체가 여성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으니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남성들 위주로 경연을 하면 흥행에 유리할 것이다.(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결국 우승자는 남성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스 트롯보다 미스터 트롯의 열풍이 훨씬 엄청나다). 그러면 팬덤은 왜 여성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걸까?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과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은 어떤 분야이든 뛰어난 남성을 선호한다.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전문성을 가진 남자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팬이 된다. 남성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보다 뛰어난 여성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발휘하는 역량은 남성에게 매력이 되지 않는다. 남성에게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성격 같은 것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남성과 여성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니, 특히 <팬텀싱어>나 <슈퍼밴드>와 같이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경연하는 프로그램에 여성이 등장한다면 남성들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2.

여성은 남성보다 많은 금기 속에 갇혀 있다. 아주 간단한 예가 있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과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그렇다). 남성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구박은 받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를 그들의 인간성이나 성격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성이 담배를 피우면 노는(?) 사람이거나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사람들은 이런 여성을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다)으로 여겨지고 심지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여성이 클래식 악기를 다루는 경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밴드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내 생각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밴드 자체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여성이 악기를 다룰 능력이 없어서는 아닌 것이 확실하니 밴드를 만드는 것이 별로 흥행에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렇게 여성은 하면 안 되는 것, 혹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꽤 많은데 그래야 할만한 어떤 이유도 없다.(아직도 여성운전자들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그냥 오랫동안 굳어진 편견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팬텀싱어>는 여성 편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유감이지만 <슈퍼밴드>는 아예 여성에게 지원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면 많은 세션들, 프로듀싱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들은 코러스나 키보드 정도다. 대체 왜?


3.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 대부분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연을 얘기할 때 단골 멘트가 있다. '자기 대신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연에 들어와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하다' 고 한다. 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동안 아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자연에 들어와 산다는 자연인은 본 적이 없다. 우선 자연인으로 사는 여성이 적고, 가끔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었다. 아마도 여성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남성은 없을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꿈을 좇아가는 것은(그 꿈이 현실적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 때) 남성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유리천장,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어린 시절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겠지만 여성은 양보와 희생의 미덕을 배우고 남성은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정신을 배우며 자란다. 그래서 여성은 실패의 가능성이 높을 때, 그리고 그것이 가족에게 부담이 될 때, 그것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 해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려면, 더구나 그것이 모험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다면 여성은, 남성보다 몇 배의 용기가 필요하다. 여성밴드가 적은 이유다.


아내가 없으면 다 해 놓은 반찬을 챙겨 먹는 것조차 못해서 맨날 라면이나 끓여 먹는다는 남성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유명한 셰프는 모두 남자다. 남성은 장로가 되고 여성은 권사가 된다. 장로와 권사는 명칭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역할도 크게 차이가 있다. 학교에는 여성 교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아이들이 여성화된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교장 교감의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 남성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여성이 전문성을 가질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고 남성이 전문성을 가진 여성을 존경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사회, 어떤 위치건 어떤 역할이건 성별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팬텀싱어>에 여성중창단도 나오고 <슈퍼밴드>에도 여성의 참여 자격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팬텀싱어>를 열심히 볼 것이다. 그런 호사를 언제 누려보겠는가. 나도 여자이니 여성중창단보다는 남성중창단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분명히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자가 기타를 치면 은혜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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