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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Aug 24. 2016

시끄러운 세상 따위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 / 1991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속도 시끄럽다.

무지하게 더워서 공기마저 시끄럽게 느껴지던 올여름,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만약 내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소리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상을 하면 할수록 물리적인 것으로 알고 있던 소리는 추상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추상적인 무엇인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은 소리가 있는 세상과는 다른 체계나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소리가 있는 세상의 번잡스러운 간섭과 침범이 문밖으로 추방된 세계.


시게루와 그의 여자 친구는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산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세상 속에 사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핍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감각만으로 다시 정의된 세계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세계는 조용한만큼 소리가 가득한 세상의 번잡스러운 간섭과 침범으로부터 자유롭다.


시게루는 환경미화원이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버려지고 망가진 서핑보드를 발견하여 우연히 서핑을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하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조용하고 푸른 바다로 매일 뛰어드는 시게루.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던 그의 몸짓은 제법 의젓한 모습을 갖추어 간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세상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잔인하고 절대적인 폭력을 통해 세계의 경계를 파괴하고 그 밖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의 체계와 질서를 우롱하고 비웃으며 저항한다.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철저히 낙오된 자들이고 그들의 탈출은 그저 세상에서 내쳐진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기타노 다케시를 통해 그들은 주인공이 되고 그들을 평가하던 세상은 그들에게 평가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내동댕이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시게루는 어떤 폭력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 속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역시 다른 영화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관점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그는 환경미화원이고 청각장애인이다. 그래서 세상은 그의 생산적이지 못한 행동을 비웃는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시게루가 가진 장애로 세상을 바꾸어 버린다. 시게루의 세상은 자신이 가진 감각만으로 다시 정의된 세계다. 그의 세상은 조용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비웃음도 들리지 않는다. 기타노 다케시는 시게루의 귀를 막아버림으로써 그를 세상의 중심에 서게 한다. 세상의 모든 평가와 간섭과 침범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그가 서핑보드를 타는 일은 그래서, 객관적이라고 우길 것이 뻔한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된다.  


마음이 시끄러운 날은 햇살 따가운 바다의 끄트머리에서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시끄럽던 마음이 조금씩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게루가 바라보았던 바다,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을 뒤로하고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꿈을 만날 수 있었던 공간. 그가 사라지고 남겨진 바다는 쓸쓸했지만 왠지 슬프지는 않았다. 그가 슬퍼하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 시끄러운 세상 따위 내동댕이 쳐버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영화 속으로 힘차게 팔을 저었을 것만 같았다. 시게루의 여자 친구는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그의 서핑보드를 바다에 띄운다. 울지 않는다.



영화는 내내 시게루의 마음 속이었다. 그 속에는 내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있었다. 시게루의 마음 속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음악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시게루의 바다로, 파도로, 미소로 눈부시게 빛났다. 히사이지 조의 음악이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한 기타노 다케시가 좋았다.

기타노 다케시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의 유머는 그의 인물들을 평가절하하는 세상에 대한 조소이자 그의 인물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도록 응원하는 목이 터질듯한 외침이다. 그의 응원을 언제나, 응원할 수밖에 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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