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배신> / 창비, <피로사회> / 문학과 지성사
성과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노력의 척도가 된 것이다. 따라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미학적으로 생존에 대한 의지가 없는 태도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p48<노오력의 배신>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p103<피로사회>
노오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p16<노오력의 배신>
폭력은 분쟁이나 갈등의 부정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의의 긍정성도 폭력의 원천이 된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의 전일적 지배는 현재로서는 합의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p101<피로사회>
노오력을 하면 살아남고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다. 노오력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고 배제된다. 반면 노오력하면 삶은 발가벗겨지고 법 밖으로 추방된다.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p44<노오력의 배신>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p28<피로사회>
수십 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 공모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부장이 열심히 일한다면 모든 개별 가족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이 믿음은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면 모든 민중이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두 가지 기획이 모두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금, 청년들이 맞닥뜨린 것은 경제적 위기인 동시에 사회적 위기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흙수저라면 경제적 하층민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천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 앞에 놓인 것이다.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산업화 시대의 명제는 엉뚱하게 뒤집어져 가난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비난의 날로 돌아와 경제적 패배자를 사회에서 아웃시켜버린다. p77<노오력의 배신>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 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주십시오. 그들은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감히 멸망을 말하지만 악의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당신들은 경악해야 합니다. (중략)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중략)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p190<노오력의 배신>, 손아람-망국선언문, 경향신문 온라인 판 2015.12.31
가속화와 활동과잉은 넓은 시간적 지평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때 미래는 현재를 연장시킨 것 정도로 축소되고, 다른 것에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부정적 태도가 싹틀 여지는 전혀 없다. 반면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중략)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p50<피로사회>
OECD 가입국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답이 없는 나라,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나라를 떠나거나 아니면 남아서 '벌레'가 되는 선택만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p192~193<노오력의 배신>
이 글을 읽은 기성세대 중 '그렇다면 왜 구조를 향해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 그 구조 아니냐고. 당신은 그들의 분노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느냐고, 오히려 사방을 막은 채 '왜 더 노력하지 않는가'라며 꾸짖어오지 않았느냐고.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대답 없는 벽과 같다. 벽에 대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낫다. p84~85<노오력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