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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Oct 22. 2016

다치는 자, 헐벗는 자, 그 인간다움

브루스 윌리스

최근 우연히 <다이하드 4>를 다시 보게 되었다. 머리가 더 많이 빠진 브루스 윌리스. 완전 무식하게 몸으로 들이대는 그는, 심지어 총상을 입고 그 총상을 통과시켜 자신을 인질로 삼은 나쁜 놈(?!)에게 총을 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재미있게 봤고 새삼 그가 좋았다. 액션 영화를 많이 찍는 몇몇 배우가 있지만 예전부터 이상하게도 그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특별히 짜임새가 좋거나 신나는 액션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이유는 하나다. 그는 많이 다친다. 대부분의 영웅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총알만 스쳐도 죽는 속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오지 못한다. 정말이지 엉망으로 다치고 모진 시련을 겪는다. 물론 주인공인 까닭에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딱 죽지 않을 만큼 다치고 고전한다. 그래서 그가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영화는 현실감을 얻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좀 심한 말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그렇다)



그가 다치지 않는 영화가 하나 있다. <언브레이커블>. 여기서 그는 전혀 다치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자마자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믿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쨌든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자신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는 특별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한 가족을 구한다. 그러나 그 한 건의 행적 이후 영화는 끝나버리고 그가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영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으로 가득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역에 익숙지 않은 그가 아무래도 자기에겐 다이하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SF 영화인 <써로게이트>에서 다시, 그는 엄청나게 다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대신하는 로봇인 써로게이트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진짜 몸으로 살아가며 넘어지고 다치고 피를 흘리면서도 써로게이트로 대신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다. 어디선가 슈퍼맨이든 배트맨이든, 울버린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혼란스럽기만 한 세상을 한방에 평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그런 능력을 가진 이가 있을 리 없고, 설사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능력을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에 쓸지는 모를 일이다.(돈을 벌고 권력을 가지는데 쓰지 않을까?) 사실, 행복한 세상은 일반인보다 몇 천배 힘이 센 슈퍼맨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가 나타난다. 그는 조각 같은 미남도 아니고(신기하게도 영웅들은 엄청난 능력뿐만 아니라 눈부신 미모도 가지고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엄청난 괴력을 가졌을 것 같은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옆집 아저씨같이 생긴 그는, 옆집 아저씨니까 슈퍼맨처럼 폼나게 싸우지 못해서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고 피 흘리지만 그래서 진짜다. 그가 좋은 이유는 그가 진짜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슈퍼맨은 나타나지 않을 거니까. 옆집 아저씨가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주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지 않으니까.


결국, 수많은 옆집 아저씨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울버린이라도 결코, 그들의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옆집 아저씨, 집 아, 어쩌면 우리, 나일 것이다. 물론 죽지 않을 만큼 다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 우리의 현실은 영화와 정말 달라서 죽지 않을 만큼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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