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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바라기 Feb 11. 2021

아빠의 울 애기

부모 경력 34년차인 아빠의 내리사랑

나: 아빠! 나 아가 낳았어!

아빠: 응?! 거짓말이지?!

나: 아니! 진짜야! 아가 지금 낳았어.

아빠: 응?!! 정말???!!! 아이고!!! 왜 얘기 안 했어?

나: 아빠 걱정할까 봐~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진 주말에 엄마, 아빠는 출산을 앞둔 딸이 걱정되는지 나를 보러 왔다. 나이 서른이 넘었어도 자주 나를 "울 애기"라 부르는 우리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가를 낳는다니 적잖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얼굴에 모든 심려와 걱정이 드리워져있었다. 아빠는 생각과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편이다. 티를 내려고 하지 않지만 이미 다 티가 나는. 아빠는 만삭인 딸을 안쓰러워하며 출산할 때 혹여 너무 고생을 하지 않을까? 혹은 잘못되지는 않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심란해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엄마, 아빠는 다음날 본가로 내려갔다. 차에 타려고 하던 아빠는 다시 나에게로 와서 진한 포옹을 했다.


"울 애기~ 다음 주면 출산이네.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아가를 낳네. 몸조심하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채로 이렇게 말하는 아빠를 배웅하며 왠지 모를 짠-함을 느꼈다.


아빠는 언제나 태산 같았다. 키도 180cm가 넘고 덩치도 있어서 아빠는 언제나 나를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아빠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얼굴의 주름도 더 생긴 것 같고, 눈의 부리부리함도 옅어지고, 어깨도 쪼그라든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할 때마다 나도 아빠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가끔 뒷모습을 보면 슬프다. 넓고 단단해 보였던 아빠의 등은 어느새 딸의 속상함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가 되어버렸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가고 인생의 과업이라 불리는 단계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다음 단계로 자동 이동된다. 결혼을 하면서 누군가의 아빠, 엄마이기만 했던 부모는 장인, 장모 또는 시엄마, 시아빠가 된다. 결혼한 자녀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부모들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내가 엄마가 되면서 우리 아빠,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라니... 갑자기 엄마, 아빠가 후-욱 늙어버린 것만 같아 속상하다.





딸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주를 본 엄마, 아빠는 정말 행복해했다. 손주 없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싶을 정도로 손주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있다. 조리원에서 캠으로 아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데 거의 하루 종일 그걸 보고 있고,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매일 손주의 새로운 사진으로 바뀐다. 아빠는 시간 날 때마다 캠을 보면서 손주가 잘 자고 있는지, 잘 놀고 있는지, 게워내지는 않았는지, 울진 않는지 확인한다. 아빠랑 통화를 하면 정말 목소리에서 손주에 대한 사랑과 감탄이 뚝뚝 떨어진다. 한참 통화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했다.


아빠: 울 애기. 괜찮은지 걱정이네.

나: 아빠, 나 괜찮아.

아빠: 아니! 너 말고, 우리 똑똑이 말이야.

나: 헐... 울 애기가 내가 아니야?!

아빠: 어! 똑똑이!


헐. 아빠의 울 애기가 변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되었음에도 정말 너무 행복해하는 아빠를 보면. 아빠의 내리사랑은 나를 통과해 우리 아가에게로 더 깊어졌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순수하게 내리사랑을 한다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님을 느낀다. 엄마이기 전, 삶의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었으니까. 내리사랑 경력 34년 차인 아빠에게 경력 10일 차인 엄마 초보인 나는 오늘도 이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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