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편지에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내리는 첫눈이 편지지 위를 가득 채워요.
살면서 몇 번이나 본 풍경일까요?
나와 세계 사이에 새하얀 장막이 쳐지는 경이로운 장면.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질리지도 않는 것은 오직 자연뿐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수없이 겪었음에도 매번 감탄하게 만드는 것도.
첫눈이 내려요.라고 짧은 문장을 적는 이 순간에 울컥하게 되는 것은, 사람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일까요.
'첫 눈'이란건 이토록 강렬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히 남아있는 기억들이 많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해의 처음 내린 눈'보다는, '특별한 사람과 함께 있었던 눈 내리는 날'의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죠.
첫눈이 신호라도 된 듯, 연인이 되었던 사람. 처음 손을 잡고 걸었던 수줍은 데이트. 함께 나눠먹었던 케이크. 나란히 앉아서 창밖의 눈 내리는 장면을 구경했던 순간. 퍼붓듯이 내리던 함박눈 아래를 함께 뛰었던 기억. 발목이 푹 잠길 만큼 하얀 눈이 쌓인 놀이터에서 두 손이 빨갛게 변하도록 눈사람을 만들었던 우리...
점점 더 커지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둘 꺼내어 보는 예쁜 장면들.
더는 곁에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라고 해도. 어떤 이유로도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훼손되지는 않아요. 잠시 아릿한 감정도 어느 순간 덤덤해질 테니까.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루와 오늘처럼, 사랑도 덧대어지니까.
올 겨울엔 어쩐지 눈이 많이 내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새하얀 눈을 배경으로 어떤 순간들을 살아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