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자리를 지켜 스스로 역사의 한 뿌리가 된 것. 그 시간을 간직해 존재만으로도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것. 끊임없이 걷고 걷는 뚜벅이 여행자의 걸음도 붙잡는 곳이 경주에 있다.
활기차게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황리단길에서 버스로 이십분. 현지인들과 여행자가 혼재된 버스 풍경을 흥미롭게 보고 있으면 금세 삼릉 정류장에 도착한다. 경주의 다른 곳과 다르게 차도 양옆에 있는 나무들이 소나무다. 구불구불 소나무들이 만든 차도 위 그늘.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풍경을 보여주는 곳. 삼릉숲이다.
삼릉숲은 직관적인 이름이다. 세 개의 신라 시대 능이 있는 숲인데, 현대에 와서는 ‘삼릉’보다 ‘숲’이 더 주목받는 듯하다. 능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송림은 사진작가들이 경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출사지다. 소나무를 주로 찍는 한 사진작가가 삼릉숲을 찍은 사진을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이 고가에 구입하면서 삼릉숲은 바로 사진작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삼릉숲의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세 개의 능은 소나무가 양옆으로 가득 채워진 흙 길로 5분이면 볼 수 있다. 가는 길 내내 줄곧 소나무들이 얽힌 것처럼 휘어져 자란 모습들을 넓은 시야로 보게 되는데 풍경 조각조각이 장관이다. 숲 자체에 깊이가 있다. 나무들이 굽어 자라나고, 땅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마치 고대의 신비한 숲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저마다 독특한 형태로 서 있는 소나무의 자연스러움 속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능을 보기까지의 길은 짧지만, 펼쳐진 풍경이 발걸음을 붙잡아 실제로 걸린 시간은 5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나만의 길을 걷는 소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같은 길을 따라 걸을 필요가 없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선택한 길로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만의 삶을 만드는 것. 진정 자유로운 삶은 삼릉숲의 소나무 같은 삶이 아닐까? 오롯이 나다운 모습으로 역사의 일부가 된 소나무는 각각의 모습으로도 함께 한 모습으로도 멋스럽다.
삼릉숲의 풍경이 유독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빛에 있다. 소나무 사이사이를 잘 비집고 떨어진 태양의 조각은 흙에 닿는데, 땅에 닿기까지의 궤적과 닿은 뒤에 흙에 퍼진 모습은 소나무와는 또 다른 나무를 보는 것 같다. 밝고 어두운 명암이 교차하는 풍경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은 맑은 날 오전이다. 부지런하게 찾아갈수록 삼릉숲의 신비로움이 선명해진다. 소나무와 햇빛, 그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의 생명력 있는 풍경은 귀하다.
위를 올려다보면 소나무 가지들이 서로 얽혀 하늘 아래 그물을 만들고 있다. 하늘을 덮은 나무들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잎사귀에 반사되어 찬란한 초록빛을 내뿜고, 가지와 가지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은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둥근 고분, 구불구불 곡선의 소나무, 카메라를 들고 이런저런 자세로 풍경을 담는 작가들, 가벼운 트래킹으로 흙 길을 걸어 들어가는 여행자들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만의 삶,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요소들이 총집합한 곳이 삼릉숲이다. 지극히 경주스러운 여행지다. 경주를 걷고 걷다가 잠시 쉬어 가고 싶을 때, 삼릉숲을 찾아가자. 잠깐 멈춰 그 장면에 풍덩 뛰어들 수밖에 없는 풍경을 지닌 숲이다.
*해당 글은 경주 관광 애플리케이션 <경주ON> 에 기고한 글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경주 삼릉숲의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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