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난임 여성에게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가혹한 ‘월말 평가’의 연속이다. 나는 20회째 월말 평가를 수험 중인 ‘N수생’이다. 평가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그에 반해 평가 결과는 단 두 개의 빨간 줄로 ‘합격(Pass)’ 또는 ‘불합격(Fail)’이 정해진다. 평가 요인과 결과는 개별적이건 복합적이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해 봐도 아직까지 내가 임신이 안 되는 이유와 임신 필승법은 찾지 못했다.
“이번에도 안 됐나요…? 나이도 어린데, 왜 안될까!”
“글쎄요… 노력하는 거 같은데… 저는 뭐 때문에 안 되는 걸까요…?”
“힘을 냅시다! 다음 월경 끝나고 3일 뒤 내원하세요.”
불합격 성적표를 계속해서 받아 보는 건 마음이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다른 부부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이 벌써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다. 또, 나처럼 계류유산을 경험한 친구들이 2~3개월 만에 바로 아이를 가지고 건강히 출산했다. 왜 나만 엄마가 되기 위한 길이 이렇게 멀고도 험한지.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마다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이것도 최선이 아니었구나...’
체질, 식단, 운동, 수면 등 원래의 생활 습관을 임신이 잘되는 몸으로 바꾸는 것에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나의 자유냐, 아이에 대한 책임이냐?”. 자유로웠던 내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주던 선택지들이 보기에서 하나씩 지워진다. 조금 과장해서, 임산부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101가지쯤은 되는 것 같다.
커피 애호가이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카페인 없는 따뜻한 차를 마신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장거리 이동을 피하고 외출 반경을 집 주변으로 좁힌다. 회사에서 민원 업무로 시달린 후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가볍게 저녁만 먹고 빨리 집에 들어간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갑자기 놀라거나 잔인한 장면이 있는 스릴러 작품은 시청하지 않는다.
고칼로리 음식을 먹은 날이면 헬스장에 가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뛰고 땀을 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이 생겨도, 사람이 붐비는 저녁 시간이나 시끄러운 핫플레이스라면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야식 메뉴가 어른거리고 배가 고픈 날에도, 밤 10시 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잠이 오지 않아 심심하더라도, 스마트폰은 절대 만지지 않는다.
임신에 성공한 친구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물구나무를 서 봐.”, “계속 누워 있는 게 최고야”, “쑥즙 먹고 나서 아이 가졌어”. 생리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아니더라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필살기까지 총동원한 난임 부부에게 월말 평가 전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던 ‘101번째 임산부 권장 행동 습관’에 그 해답이 있었나 보다! 아직까지 임신이 되지 않아 고배를 마시고 있는 걸 보면...
후회 없이 노력해 본 자만이 온전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아직 내 아이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좋은 집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N번째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오늘을 버텨 나간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행운에 맡겨 보기도 한다. ‘삼신할머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