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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우주 Oct 02. 2024

만남과 이별의 미학

Episode 4.


병원에서 초음파(Ep3. 비정상적인 심장초음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에 타자마자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너를 사랑하는 거지」 노래가 흘러나왔다. 희망 반, 절망 반. 내게는 두 개의 마음이 품어져 있었다. 어느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어질지 모르던 차에, 마침내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야, 아이가 잘 자랄 거야.', '그래, 잘못될 수 있어... 잘못될 수 있어...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래, 잘못이 돼버렸어...!' 도로 위 멀리 보이는 초록색 신호등 불빛이 뿌예져 초점을 잃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오나지 못해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찼다.


"두세 번 더~ 길을 돌아갈까~ 적막 짙은 도로 위에~ 걸음을 포갠다~"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노랫말에 완전히 감정이 이입된 나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오른손등으로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때마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제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않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것 같다. "어디쯤이야?"라고 불안하게 물어보는 남편에게 "대기 시간이 길어서 출발이 늦었어. 곧 도착해." 태연한 척 대답했다. 집에 가서 의사 소견을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둘러대며 대화를 끊었다. 자동차 룸 미러로 보니 눈은 충혈되고 약간 부어 있었다. 감정을 가라앉히려 운전석 차창을 내리며 바람을 쐬었다.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현관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최대한 울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남편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입을 떼기 어려웠지만 "심장이... 안 뛴대..."라고 나지막이 말하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서히 고개를 들자, 믿기 힘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슬픔에 나약해진 눈동자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남편은 달려와서 나를 한 품에 꽉 안았다. 그제야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얼굴이 닿았던 남편의 왼쪽 어깨 한편은 축축해질 정도로 다 젖었다. 남편의 어깨도 들썩이고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오후 느지막이 점심 식사를 차리다가 냄비에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솟았다. 물 젖은 수건을 던졌고 재빨리 불을 껐다. 잿가루가 떨어진 곳을 들여다보니, 플라스틱 재질의 티 코스터가 냄비 아래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전골냄비를 씻은 뒤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지 않고 그대로 가스레인지에 올렸던 행동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조심했어야지!" 큰 목소리로 말했고, 뒤이어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말을 이어가지 않고 내쉬는 그 한숨소리가 싫었다. 한숨 속에는 너무 많은 것이 생략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는 '오늘 하루 벌어진 모든 상황이 네 탓이야'라고 비난하는 듯했다.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채 모두 버려 버리고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다. 밤새 고민하던 나는 일주일 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의사의 처방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쉬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나는 어렸을 때 어땠어?’ 물어보는 순간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태교 일기장을 사뒀다. 그 일기장을 펼쳐 아이와의 첫 만남부터 기억을 더듬고 추억이 될 만한 일을 글로 썼다. 임신테스기 두줄을 확인한 날, 첫 초음파 사진을 받은 날, 임신확인을 받고 보건소에 찾아간 날, 입덧을 시작한 날, 임신바우처 국민행복카드를 고른 날 등등. 나를 지칭하는 주어는 ‘엄마’였고, 남편은 ‘아빠’가 되었고, 아이를 태명인 ‘용용이’로 적어 넣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기장을 다 채워 넣을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 동안 쓴 일기 덕분인지, 이별 후 애도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다시 시작할 의지가 생겼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역시 희생이 따르는 일에서 더 큰 보람과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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