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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우주 Sep 29. 2024

인생은 아름다워

Episode 2.


남편과 나는 클래식카를 타고 산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화창한 하늘에서는 햇살을 부수었고,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흘러내려 그 아래를 지나는 우리는 엷은 햇빛으로 환영을 받는 듯했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왕버들나무 같이 생긴 보호수가 도로 끝의 로터리 가운데에 심겨 있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니 로터리 한 바퀴를 다 돌아봐야지만 기둥의 둘레와 가지의 끝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나무를 구경하기 위해서 차에서 내렸다. 한눈에 나무를 담기 힘들 정도로 나무는 웅장했고 신성해 보였다. 도로에서 내리니 차로는 진입하기 어렵지만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길이 하나 뻗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돌로 쌓은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형국으로 우리는 아주 높은 곳에 서 있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넓은 평원이 보였다. 우리 눈앞에 있는 절간은 성벽 위의 탑처럼 다른 곳에서는 높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다.


절의 대웅전에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고양이 도사였다. 그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마치 영화 「쿵푸팬더」 의 제이드 궁전의 수석 마스터이자 주인공 포의 스승인 래서판다와 닮아 있었다. 그는 내게 말을 걸어왔고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재단 위에서 크게 절을 세 번 올리라고 요청했던 것 같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묘한 이끌림으로 고양이 도사의 말대로 예를 갖춰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으며 크게 절했다.


평소에도 꿈을 자주 꾸는 탓에, 이번 꿈의 내용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꿈이 생생했다. 계속 기억에 남아 해석을 찾아보니 일각에서는 ‘남자아이 태몽’ 일 것이라고 했다. 때마침 소화 불량, 가슴 통증, 허리둘레 변화 등으로 이유 모를 신체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 임신이려나 의심하던 차였다. '정말 좋은 일이 있는 소식일까?' 생각하고,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니 hCG호르몬 반응 검사 결과 두 줄이 보였다. 남편에게 말하자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임신 소식을 전하자 환희에 찬 표정으로 “드디어!”라며 나를 와락 끌어안아 주었다. 2022년. 뜨거운 여름. 우리가 처음으로 임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던 때였다.


되돌아보면, 초보 예비부모였던 우리는 임신 주차별 몸의 변화나 태아의 발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엽산을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만 봤지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하는지, 몇 주차부터 입덧이 심하고, 몇 주차까지는 안정기가 아닌지, 어떤 행동을 삼가야 하는지 등을 다 알지 못했다. 신세계였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을 때라, 면역력이 약해진 산모는 외출하지 않고 온전히 집에서 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으리라.


어리석게도 그때는 태아와 산모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걸 깨닫지 못할 때였다. 6개월 전부터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 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3주밖에 안 남은 친구의 결혼식을 망칠 수는 없었다. '임산부는 노래 부르면 안 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오히려 아이와 함께 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친구 결혼식은 더 뜻깊은 자리가 되리라! 보통 8주 차부터 입덧을 시작한다는데, 나는 평균보다 빨리 6주 차부터 속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입덧이 시작되었음에도 ‘레몬맛 입덧 사탕’의 힘을 과신했다. 그보다 자만했던 건 나의 면역력이었다.


결국 결혼식이 끝난 후 뷔페에서 식사를 했던 게 화근이 되었다. 크고 둥그런 테이블에서 12명 정도가 앉아 먹는 식사 자리였고 밥을 먹을 때만 잠깐씩 마스크를 벗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이틀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이 평온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식 하객으로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연락이 왔다. 고열과 기침이 너무 심하고 아프면서도 친구는 내 걱정을 먼저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잠복기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주일 동안 별다른 증상이 없기를 이대로 건강 상태가 괜찮기를 기도했다. 종교가 없는 자에게는 기도를 들어줄 신 또한 존재할 리가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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