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프롤로그
식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운 적이 있다. 작은 모종 3개를 심었으니 방울토마토가 작은 소쿠리 하나쯤은 채울 만큼(최소 20알 이상) 수확을 거둘 거라고 기대했다. 남향에 둔 토마토 화분에는 햇볕이 잘 들었고 그 덕분에 가지마다 노란색 꽃들이 많이 피었다. 그런데 모든 꽃들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지나면 생기와 윤기를 품었던 꽃들 중 대다수가 바짝 마르거나 시들어 꽃받침 채 땅 위로 낙하했다.
자연 바람을 맞으면서 자라야 하는 식물을 집안에서 키우다 보면 열매를 못 맺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미술도구로 쓰이는 가장 얇고 가는 붓을 사서 토마토 꽃의 수술에 비비고, 꽃밥이 묻은 붓을 암술머리에 묻혀 주면서 꿀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었다. 이런 노력에도 우리가 그 해 얻은 방울토마토 개수는 단 4알뿐이었다. 그래도 콩알만 했던 초록 열매가 제 힘으로 몸집을 키워 빨간 방울토마토로 자라준 것이 마냥 기특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렵게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소중히 여겼다.
봄에 새싹을 틔운 뒤 여름 햇볕으로 푸르게 성장한 나무에는 아름다운 꽃이 핀다. 달짝지근한 꽃내음을 맡은 꿀벌들이 다녀가면 열매가 맺힌다. 가을 동안 열매가 농익으면 결실을 이룬 나무는 나뭇잎을 벗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겨울을 맞이한다. 자연이 그러하듯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남녀가 가정을 꾸려 보금자리를 완성해 가는 과정도 비슷하다. 내가 꿈꾸던 보금자리의 완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성숙한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결혼 5년 차인 우리 부부에게 아직까지 자녀가 없다. 요즘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이 많지만, 남편은 몰라도 나는 ‘아이가 없어도 상관없는’ 부류의 사람은 못된다. 속사정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자녀 계획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혼한 지 꽤 되었으니 안부 차원에서 물을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다 몸이 붓거나 살이 오른 날의 내 모습을 보고 임신한 것으로 오해하기까지 하면 마음의 상처는 배가 된다.
나는 시험관 시술을 1년째 진행하고 있다. 자연 임신보다 시험관 시술 임신 성공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쓰면 성공하겠지 기대했었다. 이러한 기대감은 더 큰 상실감과 좌절로 다가왔다. 난임 치료와 임신 준비를 병행하며 병원을 다니면서 부단히 애써야만 했던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친구들에게서 공감을 받기 어려운 경험이었고, 남편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고충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 아픈 데 없어 보이는 환자이기 때문에 직장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사회적 배려를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자연의 상태에 나를 대입해 보자면, 나는 ‘위태로운 꽃’ 일지도 모르겠다. 고난의 시기가 지나면 내게도 사랑의 결실로 ‘아기 방울토마토’가 찾아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