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그날의 문제적 외출(ep2. 친구의 결혼식) 이후 세 번째 밤부터 에어컨 바람이 유독 차게 느껴졌다. 카디건을 걸치고 그 안으로 옷을 더 껴입어도 몸이 으슬으슬했다. 결국 한밤중 40℃까지 열이 올라가고 편도가 부어 침을 삼키기 어려웠다. 입덧인지 코로나 증상인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에 한 번꼴로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했다. 내가 아플 때 엄마가 해주었던 ‘마법의 물수건’.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이마, 겨드랑이, 허벅지 등 몸 구석구석을 닦으면 열이 점점 식으면서 감기가 나았다. 그러나 코로나는 통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고 산모가 복용 가능한 코로나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이때까지는 5주 차라 초음파로는 아기집과 난황만 확인한 상태였다. 심장 초음파를 들으러 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코로나에 걸리다니! 아픈 와중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엄마 배 속에서 편히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일 거라 생각되니 걱정이 커져 갔다. 다행히도 인터넷 맘카페를 통해 “임신 초기 코로나를 겪었지만 문제없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는 글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내가 불안해하면 태아가 버티지 못할까 열을 내리는 것에 집중했고 코로나 치료제보다 태아 영양제를 더 챙겼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격리 중인 남편을 초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부단히 아픔을 감췄다.
내가 코로나 격리 해제되고 남편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친정집이 가까이 있어 다른 가족 안부를 물으니 아빠, 엄마, 남동생도 모두 코로나에 걸려 격리 중이었다. 동행자 없이 홀로 산부인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다. 심장 초음파 예정일보다 5일 정도 지난 터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걱정거리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나를 속이며 마음을 무장했다. 혼자 잘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운전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선착순 진료인데 대기자가 많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을까 걱정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귀중한 첫 아이와의 만남을 함께하며 기뻐할 가족들이 지금 내 옆에 없고, 이 순간을 놓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기도 했다.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누운 진찰 의자 오른쪽 옆으로 하늘 높이 키를 세운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초음파 진료가 시작되고 1분 여 간은 침묵이 흘렀다. 의사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평소 말수가 적고 차가울 정도로 차분한 터라 표정 변화를 읽어 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기가 잘 크고 있네요.”, “태아가 다행히 건강해요.”라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없었다. 비전문가인 나조차 초음파를 보며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크고 시끄러워야 하는데…?
아기집 크기는 아직 작고,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니터가 초창기 초음파 사진을 송출하고 있는 실시간 진찰 모니터가 아니라거나 모니터와 연결된 소리 출력장치가 고장 난 것이기를 바랐다. 고요한 진료실의 침묵을 깬 의사의 첫마디 말은 “코로나 기간 동안 열이 많이 났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이어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산의 개연성을 높게 보지는 않지만 태아가 어느 순간부터 자라지 않아 현재 7주 차의 발달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의사는 내게 일주일의 기회를 더 주었다. 코로나 시기를 겪은 산모로부터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하기 어려워 태아의 발달이 늦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한 착상된 아기집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고 자연 유산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부정적인 소견을 들은 나는 “네...”라는 외마디만 반복했다. 내 두뇌 회로가 잠시동안 정지된 것 같았다. 태아 발달이나 착상 유지를 위한 주사 처방은 따로 없는 건지 물어볼 새도 없이 병원을 나왔다.
지금에 와서야 의사에게 일주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해진다. 태아가 성장을 제고할 확률이 높아서 필요한 기다림이었을까? 아니면 아기를 포기할 수 없는 엄마의 간절함에 대한 마음의 처방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