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시험관 시술을 받은 여성은 적어도 1~3일간 안정과 휴식(Ep 8. 배아 이식 후 병원 당부사항)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도 현재 제도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시술하는 ‘당일’ 딱 하루만 병가를 쓸 수 있다. 회사에서 난임 휴직을 인정하고 언제든지 복직을 허락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여성은 출근해야 한다.
출근해서도 내가 받는 연봉만큼의 1인분 혹은 직책에 맞는 그 이상의 몫을 해내야 한다. 난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외상이 아니고, 입원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사회적 시선은 더욱 차갑다. 난임은 회사 성과 부진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회사에서의 업무와 성과 그 이전에, 출근길에서부터 난임 여성의 스트레스는 촉발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끝없이 경쟁하는 사람들. 매일 아침 그들을 한량 가득 실은 버스와 지하철. 그 속에서 난임 환자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교통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로석, 휠체어석, 임산부 배려석은 있어도 ‘출산 장려 좌석’은 없지 않은가.
난임 환자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사람들로 빼곡한 플랫폼에 서 있으면 자연히 호흡이 가빠진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친다. 군중 속에서도 평온을 찾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무관심에 가깝다.
우리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때에는 주로 자가용을 이용한다. 자동차 후면 유리에는 “Baby in car” 표지판을 붙여 두었다. ‘과속하지 않아요.’, ‘끼어들기 말고 안전 운전해 주세요.’, ‘경적을 울리지 마세요.’라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최선의 방어 운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따른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의 차에 붙은 표지판을 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유산에 대한 나의 이력을 아는 친구들조차도 엉겁결에 말실수를 하는데(1번), 난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결혼 안 한 다른 회사 동료들은 오죽할까 싶다(2번). 숨 쉬듯 무례한 말들.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1번)
“앞에 가는 차, 너희 차 맞아? ‘베이비 인 카’ 붙어 있어서 다른 차인 줄?”
“아… 예전에 붙였는데 귀찮아서 안 뗐어! 유리에 스티커 자국 남으면 지저분해.”
(2번)
“어?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스티커 붙이신 거 보면 좋은 소식 있는 건가?”
“내가 베이비야! 저거 붙여두면 운전할 때 편하고 좋아.”
너스레를 떨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다는 걸 눈치챘을까? 내뱉지 못한 말들은 커다란 바위가 되어, 내 마음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그래도 다행히 대화 분위기가 냉랭해지지 않았고 자연스레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때론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받는다. 무례한 듯, 무례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은 대응하기가 까다롭다. 상대에게 빙긋 웃어 보이지만, 유독 몇 개의 대화창은 꺼지지 않은 채로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떠 있다.
“임신 때문에 심각해지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가더라. 애 키우는 게 더 힘든데.”
보조생식기술인 시험관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윤리적 반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그 입장에서는 난임은 고민하고 치료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생각은 내게 억지 위로를 보낼 때 의도치 않게 드러난다. ‘애 없는 지금의 자유를 편하게 즐겨라.‘는 좋은 의미로 해석을 해보아도, 이미 빼앗긴 에너지의 불씨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내가 이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대체 뭔지…’
“실험관 하면 쌍둥이 잘생긴다며. 한꺼번에 둘 낳으면 좋겠네!”
시험관 시술은 임신 확률이 30%로 높아진다고 많이들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난임 환자들도 단숨에 아이를 ‘뚝딱’하고 만드는 것쯤으로 아는 것 같다. 만 34세 미만의 여성은 고령 임산부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래서 냉동배아를 2개 이상으로 이식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시험관 시술을 받는 모두가 쌍둥이를 낳는 건 아니다. 그보다 ‘실험관’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왠지 거슬린다. 실험용 쥐가 떠올라서일까. ‘꼬부라진 혀를 교정해 주는 곳은 어디 없나?’
난임이 중대한 질환이라고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고, 결혼하더라도 자녀 계획은 부부에게 있어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전체 5,200만 인구에서 4%가 넘는 23만 명의 사람들이 난임으로 진단*을 받는다. 아마 가임기인 20~40대로 연령을 줄여보면 난임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난임 문제가 결코 외면받지는 않기를 바란다. 난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저변으로 확대될 때, 저출산 문제도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출처]
*Research@KIHASA: 난임시술 현황과 대응과제: 생식세포 기증 시술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