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당장은 난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지만, 엄마가 되어 육아를 하면서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많은 부부들이 비슷한 이유로 자녀 계획을 세울 때도 하나만 낳거나 쌍둥이를 원한다. 요즘 결혼이 늦어지면서 초산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첫 아이를 낳는 여성의 평균 나이가 32세다. 2~3년 터울을 가지고 둘째 아이까지 임신한다면, 2번 정도는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 길게는 5년까지 여성은 회사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육아 휴직의 길로 경력 단절에 들어설 위험이 있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 쌍둥이를 갖는 것은 괜찮은 선택일까?
“나 전교 1등 했어! 친척 중에 아무도 없는데, 쌍둥이 임신했어!”
또래 중 제일 먼저 임신한 친구가 자연 임신으로 일란성쌍둥이를 가졌다. 시험관 시술, 가족력이 없는데도 우연히 쌍둥이가 생길 확률은 0.002% 정도 된다고 하니, 전교생 500명 중에 한 명인 셈이다. 학창 시절에도 못해 본 전교 1등을 해본다며 친구도 자신의 상황을 놀라워했다. 놀라움은 잠시 뒤로 하고, 나는 친구의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모의 시간 절약이나 커리어 발전을 위해 쌍둥이를 계획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인 부모보다 두 배 이상으로 체력, 경제력, 아이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쌍둥이를 가진 순간부터 산모가 버텨내야 하는 신체적인 부담은 크다. 의학계에서도 다태 임신을 고위험 임신으로 본다. 산모가 입덧·임신중독증·산후 출혈·산후 우울증 등 임신 합병증을 경험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쌍둥이가 모체에서 성장하면서 그 부피와 무게로 인해 산모의 장기들은 눌리고 깔린다. 그래서 출산 후에도 산모는 몸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배가 보통 임산부보다도 많이 불러오기 때문에 뱃가죽이 늘어나면서 살도 엄청나게 튼다. 분만 후에도 배에 튼살 자국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쌍둥이 임신은 조산 확률이 55%로 높은 편이다. 모체에서 40주를 채우고 나와야 태아의 성장이 완성되지만, 쌍둥이는 보통 38주를 만삭으로 보며 32~34주 때에도 출산할 수 있다. 대개 8~9개월 만에 태어난 쌍둥이들은 미숙아로 태어나기 때문에 초기 응급 처치나 케어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쌍둥이 태아 간의 영양 공급 불균등이 심하여 한쪽이 거의 빈사 상태로 태어나기도 한다. 출산 직후에 미숙아인 태아는 인큐베이터로 옮겨져 1~6개월가량 생활해야 할 수도 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신생아기 때부터 양육 과정에서 드는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어른 두 명이 필요하다면, 쌍둥이는 최소 세 명 이상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부부 중 한 명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니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한, 옷과 젖병부터 시작해서 유모차나 카시트 등 모든 육아용품을 2개씩 준비해야 한다. 단태아라면 아기 때 필요한 물건은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가 썼던 물건을 물려받을 수 있는데 쌍둥이는 아예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이동할 때도 일반 세단으로는 무리가 있어 대형 SUV로 차를 바꿔야 한다.
체력, 경제적인 부분은 부모가 생활수준에 맞춰 조절하면서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쌍둥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둘은 비교당하는 삶을 평생의 숙제로 떠안게 된다. 같은 얼굴, 같은 부모, 같은 나이로 인하여 쌍둥이는 학교, 사회 등에서 나 한 사람의 개성으로만 인정받을 수 없는 환경을 가진다. 둘은 끊임없이 같은 비교선상에 놓인다. 쌍둥이는 남에게 양보하기가 어려운 만 3세 미만 나이 때부터 엄마나 아빠로부터 받는 애정을 반으로 나눠야 한다. 또, 다른 쌍둥이보다 비슷하거나 우월하지 못한 경우 선생님, 친구들의 기대감에서 멀어지고, 그에 따른 결핍을 더 크게 느끼는 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이 생겼네. 정말…! 신기해. 누가 첫째고, 누가 둘째야?”
“자세히 보면 달라. 언니나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게 하려고. 서로 친구지, 뭐.”
내가 맨 처음 쌍둥이 조카들을 만났을 때, 친구에게서 귀 모양이나 얼굴에 점이 어디 있는지를 보고 둘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보면 애들 얼굴이 달라져 있는 등 이유로 내 멋대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A를 B로, B를 A로. 주변 이웃사람들도 이름 부르기에 실수할 때가 많아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저 B 아니에요. A인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런 상황이 익숙해진 듯하다. 그래도 둘의 특성을 기억해주지 못하고 잘못 이름을 부르고 나면 ‘실패한 이모’라는 생각에 자책감이 든다.
일란성쌍둥이더라도 유전학적 성질이 모두 같지는 않다고 한다. 쌍둥이 간에도 서로 성격이 극명히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 명은 차분하고 책을 좋아하고 어른을 잘 따른다. 다른 한 명은 활달하고 장난기 많고 친구들을 이끄는 놀이대장이다. 친구는 쌍둥이 육아를 통해서 두 아이의 개성이 존중해 주는 방법을 터득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몇 분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형제간 우열을 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기로 정하게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는 서열이 없는 두 아이에게 임의로 서열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아이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처음 ‘쌍둥이 낳으면 좋겠네!’(Ep 9. 무례한 듯 무례하지 않은 난임에 대한 위로)는 말을 들었을 때, 옅게 웃는 것 말고는 내가 받아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쌍둥이 육아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나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욕심으로 쌍둥이를 계획한다면, 아이의 마음은 모른 채 나이만 먹는 부모가 될 것이라고! 쌍둥이 부모가 자신의 커리어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고민은 따로 있다. 한 아이에게 치우쳐 마음대로 기준을 정해 비교하고 있지는 않나? 두 아이의 각자 다른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해 주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