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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21 3cycle 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21 3cycle Ⅲ







 촬영이 있고 5일 뒤,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이번에는 방학을 맞이한 어머니도 함께했다. 교수님은 MRI 영상 3개를 차례로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이게 수술 전에 찍은 거고, 이거는 방사선 끝나고 5월 달에, 그리고 이게 저번 주에 찍은 거예요.
수술 전에는 진짜 심각했네요.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워낙 충격적이어서 일부러 다시 생각한 적이 없기는 했는데.
그랬었죠. 5월 거랑 이번 거만 보면... 한 번 보세요.

  

 교수님은 여러 영상을 돌아가며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플레어 영상의 고음영 부위는 감소 추세이긴 했지만 좌측 반구의 5~10%를 차지하고 있었고, 조영 증강 영상에도 드문드문 고음영 부위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초반 3차례의 화학요법으로 줄어든 면적보다 아직 남아있는 면적이 훨씬 커, 마음을 더 심란하게 했다.


줄기는 줄었네요. 지금 잘 되어가고 있는 거겠죠?
그럼요. 매우 좋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예상한 범위 안에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교수님의 대답은 담백했다. 실은 예상보다 좋다. 이런 경과 보이기가 쉽지 않다와 같은 반응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었다. 영상을 보고 생긴 심란한 마음들, 많이 호전된 것이 분명함에도 아직 갈 길이 많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아득함, 불안감을 교수님의 카리스마로 덮어보려 한 나름의 술책이었지만, 교수님은 나의 얄팍한 의도를 간파한 듯 피해 나가셨다. 많은 위험이 존재하는 길을 예상대로 걸어가고 있다면 아직도 많은 위기가 계속 닥쳐올 수 있음을 내포하기에 그 답은 전혀 희망적이지 못했다. 방사선 치료를 하루 앞둔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입으로는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하며 눈은 영상을 띄운 화면을 향했다. 혹시나 내가 놓친 희망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보고 또 보았다. 그런 내 눈에 띈 건 영상의학과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유의할 만한 변화 없음.



어? 영상의학과 소견은 다르네요?
안 그래도 여기에서 이견이 있기는 한데, 보시다시피 좀 줄지 않았나요?
물론 저번이란 조금씩 Level이 다르게 찍혀서 정확한 비교를 하기는 힘들지만 딱 보면 줄어보이는데.
저야 비전문가이니까요.
그래도 줄어든 것처럼 보이네요.


 줄이려 했던 찜찜한 구석이 더 늘어났다. ‘외면할까, 아니면 도전할까.’ 짧은 순간 속에서도 수없이 고민했다. 내던졌다.


플레어에서 고음영으로 보이는 부분은 그동안 계속 말씀하셨던 뇌부종인가요?
네, 맞아요.
이거는 아직 많이 남아있네요.
조만간 좋아질 거예요.
뇌부종이라면 이것이 전부 종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네요?
네, 네.
그럼 조영증강에서 고음영으로 보이는 부분은 남아있는 종양 세포라 보면 되나요?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수술 후에 남은 흉터일수도 있고, 그때 미처 제거되지 못한 혈관일 수도 있고.

   

 영상을 이러 저리 드래그하던 교수님은 한 부위를 짚더니 말했다.


여기가 혈관으로 추정되어요.
아 그럼 저기 말고 다른 부위는 종양인지 흉터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알아보려면 머리를 열어서, 저 흰 부분들을 떼어낸 다음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안 하죠.
득보다는 실이 더 커서 그런 건가요?
그렇죠.
그럼 계속 추적관찰하면서 저 고음영 부위가 늘어나느냐 안 늘어나느냐 그걸 살펴봄으로써, 저 부위가 종양인지 흉터인지 판단하겠네요.
네, 역시 의사라서 잘 알아듣네.
아... 그럼 ‘5년 간 증식이 없다, 즉 재발이 없다.’ 이렇게 되면 완치 판정 나는 거구요?
일단 그렇게 대개 이야기는 하는데 머리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해요.
평생...
평생.
그럼 딱 ‘끝났다. 와!’ 이런 식의 끝은 없는 거네요.
앞으로 화학요법 3cycle 하고 나서 후 MRI를 찍어도 저렇게 흰 부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을 거고.
네.
만약 그때 나온 MRI 사진이 지금과 별 다를 바 없이 그대로 나와도 그냥 치료가 끝인 거죠?
맞아요.
그러면 3개월 전과 지금이 그렇게 차이가 안 났다는 이번 결과는, ‘치료에도 끄떡없는 고약한 놈이거나 아니면 이미 종양은 다 사라진 상태이다.’ 두 가지 모두 해석이 가능하구요.
줄기는 줄었는데,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흠... 종합해보면 ‘지금이나 남은 3차례 화학요법 후에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그때도 지금 해주는 이야기와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요약되려나요?
음.. 그렇죠.
사실상 지금이 끝이나 마찬가지네요.
딱 ‘깨끗하게 끝난다.’ 그런 식으로 결말이 있거나 그러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아... 그렇군요. 열심히 치료받고 믿는 것. 그거 말고는 없는 거네요, 지금처럼. 으...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 바깥으로 나왔다. 병원을 빠져나오며 같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통 감을 못 잡으시는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 드렸다. 허무했다. 생각했던 끝과 너무 달랐다. 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끝이 없는 영원한 숙제였다. 실체 없는 적과의 휴전상태, 끝 아닌 끝에 아쉬움 가득한 한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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