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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05. 2024

내가 영화 감독이라면, 감각적 읽기

알퐁스 도데, <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능력이다. 무언가에 집중을 못하는 것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해!"는 애당초 말이 안되는 지적일 수 있다. 반면 "영화에는, 게임에는 집중 잘하는데.." 라면 그것은 자극이 강해서다. 자극이 강한 것들에 대한 집중은 자칫 중독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알다시피 중독은 내 발로 돌아나오기가 어렵다. 때문에 나는 자극이 낮은 대상에 내 의지로 몰입하는 것만을 진짜 집중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연습에 책읽기가 딱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집중과 몰입을 위한 방법으로 여러가지를 언급했지만 다양한 글에 효율적으로 집중하여 잘 몰입하기 위해서는 읽는 방법 자체도 다양해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읽기 방식은 대략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적 읽기 -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감상적 읽기 - 공감되는 부분, 감동과 재미를 주는 부분에 집중하여 감성적으로 읽는 것

추론적 읽기 - 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용, 즉 의도나 목적, 숨겨진 주제와 생략된 내용 등을 읽어내는 것

비판적 읽기 - 글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나 제시된 근거가 적절한지, 논리적으로 따지며 읽는 것

창의적 읽기 - 글에서 제시한 문제 해결 방법(혹은 결말)에 대한 대안을 찾거나 읽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뒷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읽는 것


상대적으로 사실적 읽기가 쉬워보이고 뒤로 갈수록 어려운 방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열 순서와 난이도는 딱히 상관이 없다. 읽기의 난이도는 읽는 방법보다는 내가 읽고자하는 글 자체의 난이도에 달려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생각해보면 "사실적 읽기" 같은 경우는 '윗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하는 식으로 시험지 위에서 단골로 만났던 부분이라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다른 네 가지 읽기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감상적 읽기"가 안될 때는 앞서 누차 강조한 재미를 느끼는 일이 사실상 불가한지라 읽는 행위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추론적 읽기"는 요즘 많이 언급되는 "맥락 읽기"와 결이 유사하다보니 "문해력"으로 대표되는 읽기 방식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문해력을 위해서는 추론적 읽기 뿐 아니라 위 다섯 가지 방식의 읽기가 모두 필요하다.


사람마다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낼지는 제각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방식들은 굳이 나누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이 글을 읽을 때는 이 방식, 저 글을 읽을 때는 저 방식, 하는 식으로 버튼을 바꿔 누르듯 읽기의 모드를 내 맘대로 대번에 전환하기도 어렵다. 이 글은 읽다보니 감상적 읽기에 치우쳐 읽게 되었고, 저 글은 읽다보니 추론적 읽기와 비판적 읽기에 가까운 느낌으로 읽었네? 가 되는 것이 맞다. 다섯 가지 읽기 방식은 상황에 따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되는 것이며 때로는 하나의 글을 읽을 때 세가지, 네가지 방식이 함께 쓰이기도 한다.


물론 이 다섯 가지 방식들이 세상 모든 읽기를 커버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때때로 이 방식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들로 단편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 중 하나는 작가가 텍스트로 설명한 장면을 내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하면서 텍스트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까지 그려보는 방식이다. 이 이야기를 영상물로 만든다고 가정하고 내가 감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텍스트를 읽으면서 동시에 텍스트를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진 모든 상상력과 이전에 보았던 모든 시각 매체에 대한 기억을 동원하여 어떤 소품과 어떤 배우를 활용하여 어떤 앵글에서 이 장면을 담을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이는 여지껏 언급한, 문맥을 읽어내어 주요 내용과 큰 주제를 파악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얘기다. 그보다는 좀 더 피상적이고 사소한 면에 치중하는 방식인데 굳이 이름을 짓자면 "감각적 읽기"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이런 연습에는 남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숨막히도록 아름답게 묘사한 알퐁스 도데의 작품들이 적격이다. 목동과 주인집 아가씨가 산 위에서 별을 보며 지새운 하룻밤을 그려낸 <별> 속 문장들은 밤에 벌어지는 자연 현상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부분이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만약 여러분이 한 번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 보았다면 알 겁니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 고독과 침묵 속에서 신비로운 세상이 깨어난다는 것을 말이죠. 그럴 때 샘물은 낮보다 한결 또랑또랑한 소리로 노래하듯 흐르고, 연못은 작은 불꽃들을 밝히지요. 산의 모든 정령들이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하고요. 허공 중에는 뭔가 삭삭 스치는 듯한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마치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풀들이 쑥쑥 커 오르는 소리처럼 들려온다니까요. 낮 시간은 존재들의 삶이지만, 밤은 사물들의 삶입니 다. 이런 걸 익숙하게 접해 보지 않았다면 무섭게 마련이지요.


한번쯤은 영상 천재와 음향 천재가 만나 제대로 담아주었으면 싶지만 일단은 내 머릿속에서만이라도 그려보도록 하자. 시나리오를 보듯 본문을 하나하나 다시금 뜯어보며 백지 위에 하나씩 산과 나무를 배치하고 인물을 등장시켜본다. 물론 같은 이야기를 놓고도 어떻게 연출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다. <별> 속 아가씨를 두고도 누군가는 맥켄지 포이를 닮은 인물을 상상할 것이고 누군가는 다코타 패닝과 유사한 얼굴을 그릴 것이다.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헤어스타일로 연출할지, 촬영지로 국내의 장소를 섭외한다면 곤지암 화담숲이 적격일지, 제주의 새별오름이 나을지, 대관령 양떼목장이 좋을지를 차근차근 따져가며 구체화해본다. 이런 궁리를 하면 할수록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면서, 단편을 읽는데 있어 '시각화' 또한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앞서 시각적인 매체가 자칫 중독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지만 이런 류의 시각화 활동은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기에 적극 추천하는 바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뭔가를 읽을 때마다 책리뷰를 써야 한다거나, 줄거리를 요약해야한다거나, 특정 장면을 시각화해야 한다는 등 독후활동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독후활동보다는 독서활동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은 언제나 옳으니까! 그렇지만 가끔은 재미삼아 머릿 속에 연출한 장면을 직접 현실로 꺼내볼 수도 있다. 여러 수단 중 나는 그림을 종종 활용하고 있다.


참고로 이런 시각화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과연..?'이라고 얼핏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머릿속에 쌓여있는 정보들이 많아야 그걸 기반으로 장면 장면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화담숲도 알고 새별오름도 알고 양떼목장도 알아야 머릿속에서 최적의 로케 선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앞서 '시각화'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이 활동은 내 머릿속의 기억을 최대한 동원해서 그걸 이리저리 끌어다가 활용하는 연습에 더 가깝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 머릿속기억의 구슬을 다 쏟아내 놓고 꿰는 활동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주제와 결말에만 국한해서 본다면 참 재미 없을 수도 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있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을 중점으로 한다면, 그 중간 과정은 그저 '2시간이 걸리는 이동'에 그치고 만다. 이런 시각으로 <별>을 보면, '청춘 남녀간에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룻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는 동안 이런 것도 살피고 저런 것도 들여다보고 할 때 이 이동은 비로소 '2시간 짜리 산책'이 되고 ‘2시간의 여행’이 되어 그 자체로써 또 하나의 즐거운 액션이 될 수 있다. <별> 또한 그렇다.


10권을 읽고도 1000권을 읽은 것에 준하는 효과를 내는 책 읽기 기술 같은 것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읽어야 재미있게 읽고, 또 꾸준하게 읽을 수 있는지는 안다. 다행스럽게도 문해력은 벼락치기보다는 "꾸준함"에 닿아있는 영역이다. 나는 뭐가 됐든 당신이 읽는 행위에서 재미를 찾고, 그 재미를 발판삼아 꾸준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그 여정 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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