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Jan 15. 2024

책 읽을 시간? 3B로 만들자

카렐 차페크, <첫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읽을 시간이 없다고. 정말일까? 사실 요즘의 우리는 하루종일 읽는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뭔가를 많이 읽은 세대는 없었을 거라 단언할 수 있다.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남의 SNS를 보고 웹툰과 웹소설을 보고 뉴스 기사를 본다. 친구가 보낸 메세지를 확인하고 책 내용을 요약한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3줄로 요약해 놓은 정보성 카드 뉴스 같은 것들도 본다. 내가 구매하고자하는 상품에 대한 설명 같은 것도 찾아본다. 엇,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보니 사실은 '읽는'게 아니라 '보는'것 같기도 하다.


읽는 글과 보는 글은 다르다. 우리는 콘텐츠 대부분을 모니터 혹은 액정으로 보는데, 그나마도 스압은 곧 스킵이라 긴 글은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읽는 글과 보는 글의 차이는 뭘까? 기본적으로 보는 글은 전문을 꼼꼼하게 보기보다는 F자 혹은 Z자로 훑어보게 된다. 이런 방식은 두 알파벳이 생긴 모양대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정도만 보고 중간은 스킵하는 형태다. 이런 식으로 글을 읽는 습관이 생기면 뭔가 읽기는 했는데 제대로 내용 파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디테일을 놓쳤으니 읽은 내용에 기반해 뭔가를 생각할 여지가 없고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사고력도 무뎌질 수 있다. 이쯤되면 상황은 문해력 바깥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사고력이 무뎌지면 주의력도 떨어질 수 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들의 대부분은 그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스마트폰을 볼 시간에 책을 보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3B 비법을 습관화하면 가능하다. 내게 있어 3B 비법이란 아래와 같다.


3B : Bed / Bath / Bag


침대 맡에 책을 두어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을 조금 읽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 때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을 보고, 가방 속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을 펼치는 것이다. 내 경우는 3B 중 Bag이 가장 유용하다 느낀다. 늘상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바람에 잘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음식점과 카페에서도 기다린다. 미용실에서 새치 염색을 하면서도 기다리고 병원 진료를 볼 때도 기다린다. 그럴 때마다 별 의미도 없는 무한 스크롤 대신 책을 펼치면 된다. (진료 대기실에 다른 환자들이 많으면 설레기까지 한다. 오오! 여기서 다 읽고 갈 수 있겠군! 물론 죽을 듯이 아플 때는 예외다.)


3B 비법을 활용한 책 읽기에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적합한 것은 아니다. 각 잡고 앉아서 수험생의 자세로 읽어야하는 책들이나 긴 호흡이 필요한 책들은 이런 방식의 읽기와 매칭시키기 힘들다. 나는 이런 읽기에도 역시나 단편 소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타이밍이 좋으면 이야기 한 두개 정도를 뚝딱 읽고 끝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 책을 덮었다가 몇 시간 뒤에 다시 열어도 앞이야기를 까먹었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특히 Bag에 넣어다니기 딱 좋은 책이 있다. 카렐 차페크의 단편들인데 일단 제목부터가 <첫번째 주머니 속의 이야기>다. 출판사에 따라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등으로 제목이 붙은 경우도 있다. 그럼 두번째 주머니, 왼쪽 주머니는 없냐고? 물론 얘네들도 있다! 무튼.. 카렐 차페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로봇'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낸 체코의 대문호다. '로봇'은 카렐 차페크의 여러 작품들 중 SF스러운 작품에서 등장했는데 주머니 속의 이야기에 모인 작품들은 SF는 아니고 전부 탐정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비비꼬인 트릭을 헤쳐나가며 진실을 찾아 악을 징벌하는 그런 전형적인 탐정물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카렐 차페크의 이야기에는 브레인이 없고 영웅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전형적인 탐정물의 결말에 기대하는 내용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들이 흐르는데, 이것이 때로는 허망하기도 하고 시시하기도 하다. 그런데 에잇, 시시하네! 하고 그만볼까? 하다가도 그만두기는 왠지 좀 아쉬워서 한 편만 더 볼까?하게 되는 츤데레같은 매력이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기보단 철학적이고 풍자적인 맛이 더 많이 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따스한 톤을 잃지 않는다. 다들 길이도 무척 짤막해 샛길로 빠질 틈이 없는 것도 강점이다.


<배우 벤다의 실종>이라는 작품의 말미에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따져묻는 살인자에게 벤다의 친구 골드베르크가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이 살인자라는걸 내가 알고 있으니 내가 살아있는 한 당신을 끝까지 괴롭히겠다고, 당신은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당신이 그 일을 잊도록 놓아두지 않을거라고, 당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 기억하게 하겠다고 말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일말의 기대를 품는 것이다. 죄를 지었다면 응당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고 그로 인해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 비록 법적으로 단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것들’에 기대어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믿음. 즉,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믿음. 살인 사건 등 범죄 이야기를 연달아 읽다보면 자칫 정서적으로 피폐해질 수도 있지만 카렐 차페크의 이야기들은 이러한 믿음의 기반 위에서 쓰여진 것들이라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 있게 Bag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권할 수 있는 이유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바로 "멀티 태스킹"이다. 우리는 멀티 태스킹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멀티 태스킹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사실 멀티 태스킹은 아주 빠른 작업의 전환일 뿐이다. 집중할 틈 없이 계속 전환만 하다보면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성과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결국 시간만 허투루 쓴 셈인데 이것은 우리 뇌의 물리적인 영역에 닿아있는 과학적인 사실이다. 물론 사고력과 주의력이 높은 수준으로 필요하지 않은 일은 그렇게 해도 된다. 손으로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입으로는 엄마랑 이야기를 하고 중간중간 TV 드라마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일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를, 책읽기를 그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 TV를 틀어놓고 엄마랑 수다를 떨면서 시험 공부를 한다? 당장에 등짝을 맞을 일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책 읽기 역시도 작업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멀티 태스킹과 분명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멀티 태스킹에 비하면 전환의 속도가 훨씬 느린 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 예를 들어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눈 앞의 텍스트에 바로바로 집중이 잘 안되는 이들에게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차라리 아침에 딱 15분만 더 일찍 일어나서, 그 15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꼭 새벽 4시에 일어나야만 내 삶이 미라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자기계발의 시작이다. 매일 아침 더도말고 덜도말고 단편 소설을 딱 한 개씩만 읽고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을 가져보라 권하고 싶다.

이전 15화 문해력이 세상을 바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